[책]문화계인사 4명, 일산 지하셋방에 '공동창작구역' 마련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34분


김훈씨
◇소설가 윤대녕-시인 원재훈- 문화컬럼니스트 김훈-사진작가인 윤광준

모두 내달 책 출간 …주말엔 함께 술 한잔

"혼자서 글쓰다 얼굴 맞대니 외롭지 않아"

소설가 윤대녕(39), 시인 원재훈(40), 문화컬럼니스트 김훈(53), 오디오 기기 전문가이자 사진작가인 윤광준(43).

얼핏 공통분모를 찾기 힘든 문화계 인사 4명이 일산의 한 지하 전셋집에서 ‘동거’중이다. 서로 의기투합한 이들이 같은 집에 공동 창작실을 마련한 것.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다음달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윤대녕씨는 2년 만에 신작 중편 ‘사슴벌레 여자’(이룸)를, 이화이라는 필명을 가진 원재훈씨는 첫 장편소설 ‘상사화가 필 무렵’(이룸)을 이 전셋집에서 완성해 선을 보인다.

김훈씨도 영웅 이순신이 주인공인 1인칭 소설 ‘이순신―한 남자의 칼과 길’(생각의나무)을 최근 여기서 탈고했다.

‘오디오 감식가’로 널리 알려진 윤광준씨는 오디오 명품에 얽힌 사연을 담은 산문집 ‘전기를 꼽으면 소리가 나나’(가제·효형출판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들의 공동 창작실은 경기 일산시 백석동 알미공원 인근에 있는 방 3개 짜리 지하 다세대 주택. 큰 방은 김훈과 원재훈이 같이 쓰고 있고, 윤대녕과 윤광준은 각각 독방을 쓴다. 이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에 나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방 풍경은 4인4색. 필요한 책과 자료만 집에서 갖고 온 윤대녕씨의 방이 가장 깨끗하다. 반면 오디오 기기가 박스째 쌓여있는 윤광준씨 방이 가장 어지럽다. 파지를 남발하는 김훈씨의 살림이 가장 단촐해 원고지와 책 몇 권이 고작.

한 지붕 아래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지만 생활은 제각각이다. 아침 9시경 원재훈씨가 자가용으로 선배인 김훈씨를 ‘모시고’ 가장 먼저 도착하면, 점심때엔 전날 밤샘 작업을 한 윤광준씨와 윤대녕씨가 등장한다.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다른 사람 집필에 방해되지 않도록 ‘말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에티켓이 됐다.

그나마 ‘단체 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주말에 인근 포장마차에 모여 소주 한 잔 나누거나,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을 쓴 김훈씨를 앞세워 주변을 자전거로 산책하는 게 고작이다.

집필실 방장을 맡고 있는 원재훈씨는 “대부분 혼자서 글을 쓰던 사람들인데 얼굴을 맞대고 함께 지내니까 든든하고 외롭지 않다”고 공동 창작실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같은 ‘희한한 동거’의 기원은 1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9년 말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원재훈씨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인 윤광준씨와 의기투합해 집 근처에 가장 싼 집필실을 물색했던 것.

몇 달 후 윤대녕씨가 놀러왔다가 새 식구로 눌러앉았다. 올해 초에는 일산에 살고 있는 김훈씨가 자택 근처의 도로공사 소음을 꾹꾹 참아가며 소설을 쓰다가 이곳으로 ‘대피’해왔다.

일산에는 문인들이 많이 살지만 이 곳 만큼은 ‘외부인 출입금지’다. 네 명의 입주자가 각각 서로의 고독을 존중하고, 또 고독을 지켜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그런 점에서 이 곳은 상대방의 창작 환경을 지켜주는 문인들의 ‘공동경비구역’인 셈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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