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학교]서울 동덕여고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48분


◇도서관만큼 재미있는 곳이 있나요?

“선생님, ‘가시고기’랑 ‘국화꽃향기’ 중에 어느 쪽이 더 재밌어요? ‘링’도 많이 빌려보나요?”

“선생님, ‘해리포터 이야기’ 신간이 들어왔다면서요?”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덕여고 사서 이숙희교사(44)는 쉬는 시간이 되면 눈코 뜰 새가 없다. 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들을 맞아야 하기 때문.

“요즘 아이들이 비디오 세대여서 책을 멀리한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도서가 1만5000권 정도 되는데 하루에 500명 넘게 책을 빌려가요. 볼 만한 책을 가깝게 놓아둬 보세요.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장서 13만권이 넘는 서울 용산도서관의 하루 이용객이 800명선인 점을 감안하면 85평짜리 ‘미니’ 도서관의 활약은 눈부신 수준이다. 교과목을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고교생들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학생들이 미니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이유는 뭘까.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2학년 정민경양(16)에 따르면 “먼지 쌓인 오래된 책보다 따끈따끈한 신간이 많아서”다. 정양 말대로 소장 도서 대부분이 신간이다. 플라톤의 ‘국가론’과 나란히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과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무라카미 하루키의 ‘슬픈 외국어’가 꽂혀있다.

영화 시사 과학 패션 음악 등 30종의 주간지와 계간지도 학생들의 발길을 붙드는 비결.

도서검색용 PC에 주제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다. 책을 빌릴 때는 일반 학교 도서관과 달리 바코드가 있는 학생증을 기계에 대기만 하면 된다.

책을 빌리려는 학생들의 줄이 도서관 문밖까지 이어지자 99년 1000만원을 들여 검색 및 대출을 전산화한 덕이다.

입시 경쟁으로 삭막해진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마음 붙일 곳’을 마련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이 학교 교사들이다.

92년 교사 70여명은 세로쓰기 책들만 줄줄이 꽂혀있는 ‘죽은’ 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교사들의 독서 모임 ‘글방’을 만들었다. 한달에 3000원씩 회비를 걷어 책을 사서 돌려읽은 뒤 학교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기증한 도서는 모두 2000여권. 총동창회와 학부모들도 도서관 살리기에 합류해 매년 3000권 이상의 신간을 사들이고 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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