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교 거부' 갈수록 확산…대안학교로…집에서 홀로…

  • 입력 2001년 2월 23일 18시 22분


“엄마,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 거야. 엄마는 잘 알아둬야 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말야.” 딸의 이 같은 항의를 받은 채모씨는 고민 끝에 결국 딸을 자퇴시키고 집에서 교육(홈스쿨링)하기로 했다.

학원을 경영하는 박모씨(49)는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의 진로를 고민하다 결국 무인가 대안학교를 택했다. 아들이 자연과 더불어 인성을 갖추며 자라길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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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씨의 딸이나 박씨의 아들은 자의든 타의든 우리 교육체제에서 ‘튕겨 나온’ 청소년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나 교과목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교육에 염증을 느껴 다른 길을 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이들은 공부하는 방법과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뿐이며 교육을 거부하지는 않고 있다. 틀에 짜인 정규 학교 교육을 싫어할 뿐이라고 말한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택하는 사람들은 ‘교육〓학교’라는 등식보다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산 어린이학교’를 둘러싼 논란도 ‘의무교육〓의무취학’이라는 교육 당국의 입장과 의무교육은 학교 밖에도 배움터가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교육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라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충돌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올해 14세 외아들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집에서 가르치고 있는 충남 모 대학 김모교수는 “아들이 외국 생활을 오래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데다 교직원이 승진에 필요한 교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해 학교를 그만뒀다”며 “학생이 원하는 것을 학교가 주지 못하면서 학교를 그만둘 자유마저 막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현행 교육 관련법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규정, ‘…초등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 ‘…중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고 해 ‘학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획일적인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면 학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서구 국가들은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를 통해 청소년들이 다양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영국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9개국이 홈스쿨링을 지원하고 있으며 스페인 그리스 네덜란드는 홈스쿨링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개별적인 사례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는 약 3000개의 대안학교가 있으며 이들 대안학교에서는 학습 목표 및 교과목 등을 학생이 결정하고 연령과 학령에 무관하게 학습 진도를 설정해 학생들이 성공적으로 배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방송대 방송통신교육연구소 김재웅(金在雄)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을 해도 법적으로 학력을 인정한다”며 “교육을 국가만이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가받지 않은 교육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지방교육기획과 김태훈(金泰勳)사무관은 “취학을 강제하지 않으면 아동 학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소수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해 비인가 학교의 학력을 인정하면 ‘학교’라는 간판을 내건 학원이 난립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겨 다수 학생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교육계는 착잡하다. 서울 미동초교 전순익(全順翼)교사는 “오죽했으면 학교를 거부하고 홈스쿨링을 택했겠느냐”면서 “이 같은 현실이 부끄럽지만 법을 어겨가면서 자식을 가르치느니 학생 학부모 교사 정책입안자가 머리를 맞대고 현실을 타개할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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