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주역 이원국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

  • 입력 2001년 1월 30일 19시 12분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립발레단 주역 이원국(34).

국내에서 남성 무용수가 그처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적은 없었다. 발레 스타로는 드물게 팬 클럽이 있고 지난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는 그의 배역이 바뀌자 환불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등학교(부산 동명공고)를 6년간 다녔을 정도로 한때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집안에서도 내놓은 이 문제아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20세였다. 30여명의 수강생 중 남자는 그 혼자였다.

한때 ‘볼쇼이의 독재자’로 군림한 러시아의 세계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주저없이 한국 발레의 최고 무용수로 낙점한 그를 만났다.

―지난 연말 그리가로비치의 ‘호두까기 인형’이후 좀 뜸했는데.

“무대 위와 연습실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2월16, 17일 무대에 오르는 ‘해설이 있는 발레’ 중 모던 발레 ‘나의 짜라투스투라여’ 등을 연습하느라 오전 10시부터 8시간이상 땀을 흘리며 산다.”

―어떤 작품인가.

“샹송과 클래식을 음악으로 한 창작 발레다. 섹시한 분위기다. 김주원 김지영과의 3인무는 기대해도 좋다.”

―올해 출연하는 작품 가운데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6월)와 ‘스파르타쿠스’(8월)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파르타쿠스’는 작품의 시의성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호두까기’라고 모든 작품이 똑같지 않다는 걸 눈으로 보지 않았나. ‘스파르타쿠스’를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 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 발레계가 반드시 넘고 가야할 계단이다. 스파르타쿠스로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 내 발레 인생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요즘 빠르면 유치원 때 발레를 배운다. 늦게 발레를 시작한 이유는.

“한마디로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다. 영락없는 비행청소년이었다. 집을 들락거리고, 술 담배에 정말 놀기도 많이 놀았다. 오죽하면 6년간 고등학교를 다녔겠나(웃음). 발레는 그래도 아들을 못 버린 어머니의 마지막 권유였다. 처음 발레 학원에 들어섰을 때 여자 애들이 타이츠를 입고 다리를 쭉쭉 들어올리는 데 눈을 못 떴다.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과 적성이 맞은 것 같다.”

―후배인 김용걸의 해외진출을 보면서 좌절감은 없었나.

“그건 김용걸의 재능이자 몫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콩쿠르는 대개 만 26세까지 출전이 가능하다. 결국 뒤늦게 발레를 시작한 게 부담이 됐지만 후회는 없다.”

―파트너와의 관계는.

“춤을 출 때 파트너는 연인이자 아내다. 아니, 나의 모든 것이다. 그런 감정이 없다면 기교는 가능할지 몰라도 깊이있는 파드되(2인무)는 없다.”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은 없나.

“발레를 시작한 뒤 정말 다른 것은 새까맣게 잊었다. 시간과 몸이 허락할 때까지 무용수로 남고 싶다.”

△“범아, 발레 한번 해 보자”(이원국의 어머니)〓범은 어릴 때 이원국의 이름. 86년 스무살짜리 고2의 인생이 바뀐다.

△“안 들어본 사람 없어요”(이원국)〓현재 국립발레단 김주원까지 여러 발레리나와 춤을 췄다며. 박경숙(광주시립발레단장)―문훈숙(유니버설발레단장)―박선희―전은선(이상 유니버설발레단)―강예나(아메리칸발레시어터)―김지영(국립발레단) 등이 파트너였다.

△“그 무용수는 춤추는 요정”(이원국)〓‘그 무용수’는 문훈숙을 지칭함. 문훈숙은 춤출 때 감정이 매우 섬세해 남성파트너가 이를 잘 소화해 주지 않으면 공연을 그르칠 수도 있다며.

△“내가 내일 결혼하면, 여러분은 연습 쉽니까?”(유리 그리가로비치·전 볼쇼이발레단 안무가)〓국립발레단과 ‘호두까기 인형’을 연습하던 중 한 단원이 결혼을 앞두고 연습에 빠지자.

△“마흔 넘은 왕자들은 어디로 가죠”(이원국)〓클래식 발레의 남성 주역은 대개 왕자형이어서 마흔을 넘기기 쉽지 않다며.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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