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나홀로 대입준비' 서울대 최연소 합격 황효순 양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44분


효순양은 고등학교를 입학한 지 두 달 반 만에 자퇴하고 혼자 대학 입시를 준비해 성공한 ‘사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에 다니던 학생들이 내신성적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자퇴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효순양처럼 학교를 ‘등진’ 학생은 드물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자는 애들이 많아 산만한데다 남자애들이 학교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대기도 하고, 정말 ‘교실붕괴’란 말 그대로였어요. 차라리 혼자 공부해보자 싶었어요.”

‘고교 1학년생’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이었을 학교를 떠나는 게 두렵지는 않았을까.

“부모님이 많이 놀라고 반대하실 정도로 자퇴가 힘들긴 했어요. 공부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무척 중요하다는 제 판단을 믿고 격려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가능했죠.”

효순양의 아버지 황선웅(黃善雄·50)씨는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으로 중앙대 상경학부 교수이고 어머니 우종원(禹鍾瑗·48)씨는 고려대 의대 출신의 소아과 의사다.

우씨는 맏딸이 처음 자퇴 결심을 털어놓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애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학교를 떠나겠다고 생각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는 것. 한동안 딸을 달래고 설득했던 부모가 오히려 딸에게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력과 끈기가 남다른’ 효순양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씨는 “돌이 지난 지 얼마 안된 효순이가 집에 있는 100조각짜리 퍼즐을 보더니 한참을 끙끙대며 끝내 다 맞추더라”면서 “채근하지 않아도 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딸이 혼자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막상 혼자 공부한다는 게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고졸 자격 검정고시는 무난하게 치렀지만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공부에만 매달려도 원하는 대로 성적이 오르지는 않았다. 막바지 6개월 동안은 부족한 수학과목을 대학생에게 과외를 받으며 보충하기도 했다.

정작 힘든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어쩌다 교복입은 친구들을 보면 왜 그리 부럽던지…. 혼자 눈물 흘린 적도 많았어요.”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찍어누르며 말을 얼버무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소녀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통통했던 몸무게가 1년 사이 20㎏이나 빠졌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우양은 150㎝대 후반의 키에 40㎏대 후반의 몸무게로 갸날픈 몸매를 지니고 있다.

한 때 미국으로 유학가려는 생각도 했지만 “도망가듯 떠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난 할 수 있다”고 되새겼다.

“마음이 허전할 때 동네 도장을 찾아 발차기와 겨루기를 하며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는 효순양은 ‘태권소녀’였다. 다음달 4단 승단 심사를 받고 사범자격증까지 따서 나중에 유학가면 많은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효순양은 ‘악바리’다. 방문교수로 미국에 간 아버지를 따라 6학년 1년간을 미국 초등학교에 다닌 효순양은 영어교습을 받으면서 전 과목에서 A를 받아 졸업 때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사인이 들어 있는 성적우수상(Academic Achievement Award)을 받았다.

효순양은 무덤덤하게 “미국에 갈 때 알파벳도 몰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동생들과 영어로만 얘기하고 생활을 영어식으로 하니까 적응이 빨랐어요”라고 말했다.

미국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도 ‘자퇴’에 한몫을 했다.

“한국에서 학생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고 점수 올리는 것만 너무 강요당하는 것 같아요. 막상 시험 끝난 뒤 물어보면 배운 내용을 잘 모를 걸요?”

효순양은 “미국에서는 한 주제에 대해 심층적인 보고서를 써오게 하는 숙제가 많았고 그걸 발표하게 만들어 스스로 알게 하는 체험학습이 많아 대조적이었다”고 말했다.

귀국해 중학교 1학년에 편입했다. 효순양은 미국과 한국의 학기제 차이에 따라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와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배우지 않아 동년배보다 한 학년 앞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성적은 1학년 때 학급에서 10등 수준이었다가 3학년 무렵 2, 3등 수준으로 올라섰다.

비록 학교를 ‘등졌던’ 효순양이지만 ‘세계적인 과학자’를 꿈꾸게 된 것은 ‘선생님’ 덕분이었다.

“중학교 물상선생님이 워낙 재미있게 가르쳐서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나뭇잎이 단풍들어 색이 바뀌는 거랑 실험 실습 때 무색의 액체가 울긋불긋 변화하는 원리를 밝혀내는 일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평소 화학에 관심을 갖고 책도 많이 읽은 효순양이지만 전공지식을 묻는 이번 서울대 입시 면접에서 ‘원소 생성에 대해 얘기해 보라’는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면접에서 2, 3세 많은 선배들과 경쟁하는 게 부담스럽고 주눅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효순양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점수가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현실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공부를 못하고 ‘점수’에 매달렸지만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나를 위한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어요.”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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