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한국의 지성 100년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55분


◇저항…침묵…변절…한국 지식인의 궤적

우리는 곧잘 지식인의 소임을 말한다. 그 지식인들은 지난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왔을까?

한국의 지난 100년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식민지로부터 시작해 투기적 국제자본의 노리개로 전락하기까지 세계사적 파동에 휘말리면서 한 순간도 순조롭지 못했다. 이런 역사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교수신문’이 지난해 마련한 토론회의 성과를 모아 펴낸 ‘한국의 지성 100년’은 이런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네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시대상과 더불어 그 안에 존재한 지식인들의 특성을 검토했다.

필자는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역사학) 김대환(인하대 교수·경제학) 김진균(서울대·사회학) 남송우(부경대·국문학) 박홍규(영남대·법학) 이만열(숙명여대·역사학) 이삼열(숭실대·철학) 이상희(서울대 명예·언론학) 이진우(계명대·철학) 임현진(서울대·사회학) 장회익(서울대·물리학) 정영태(인하대·정치학) 정현백(성균관대·역사학) 조동일(서울대·국문학) 조석곤(상지대·경제학) 조영건(경남대·경제학) 조한혜정(연세대·사회학) 지은희(한국여성단체엽합) 등 18인.

제1장 ‘문명 개화와 국권의 상실’에서 필자들은 20세기 전반의 구한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를 다루면서 지식인이 당대 사회 개혁과 대외적 자주라는 시대과제에 대처할 선도세력이었고 예언자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당시 예언자적 지성에 충실하지 못한 지식인들도 있었으며, 그에 따른 명암은 우리 시대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의 경험에 비추어, 최근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민족적 과제를 소홀히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민족통일 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여부가 오늘날 지식인의 존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번째로는 해방 이후부터 1960년까지의 지식인들에 대한 재평가이다(2장 ‘좌우의 이념대립과 정부수립’). 이 시기를 다룬 필자는 지성의 소임은 역사 창조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과업을 수행한 성과를 찾아 평가하고 계승하는 일이 소중하다고 주장했다.

좌우의 이념대립과 민족분단의 시련을 이겨내려고 한 민족지성을 찾아서 평가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학문은 민족 통일을 설계하고, 동서의 이념대립을 넘어서고, 근대를 극복하며, 세계사를 새롭게 창조하는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군사정권하의 지식인들을 다루었다(3장 ‘경제개발, 독재, 그리고 민주주의’). 필자는 이른바 개발연대의 대부분 지식인들은 개발 독재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거나 묵종했고, 일부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강한 지식인들은 아예 발벗고 나서 이를 지지하거나 찬양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독재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통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한 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근대화 패러다임이 가져온 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지식인이 비판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식인 사회가 이념적이론적 개방성과 다원주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네번째로 1987년 이후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시민사회가 성장한데 따른 지성의 변조를 검토했다(4장 ‘근대 민주주의의 형성과 시민사회의 성숙’). 이 기간 지식인의 위상은 비판과 저항의 역할 뿐 아니라 참여와 개혁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조된다고 했다.

실제 1990년대에 들어와 지식인의 현실비판과 사회개혁 의지는 여러 형태의 광범한 학술 문화 시민운동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 시기별로 달리 나타나는 지식인들의 특성과 그에 따른 활동의 궤적을 추적했다. 또 근래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편의 글들은 오늘날 지식인의 자기 고백적 증언일 수도 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국 지식인들의 고뇌를 담고 있다.

계속된 역사의 굴곡을 겪으면서 당당한 주체로서 자기 목소리를 지닐 수 없었고, 어떠한 소신도 용납되지 않았으며, 단지 상황에 따라 운명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정해질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대적민족적 소임을 찾아 부단히 노력한 성과들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난 100년간의 한국사는 다양한 요소와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만큼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상반된 시각에서 비판한 토론문들을 함께 접할 수 있다. 이 점도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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