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박쥐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48분


◇'박쥐'예찬 손성원 교수

박쥐요? 귀여운 동물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연해질 이야기다. 박쥐의 습성 생태 분류법 등을 우리나라 최초로 교양 과학서 ‘박쥐’(지성사)에 담아 낸 손성원 교수(경남대 생명과학부). 그의 얘기는 그러나 진지하기 그지없다.

“일부 박쥐는 콧등 위에 돌기가 있어 징그럽기도 하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박쥐는 얼마나 예쁜데요. 황금박쥐라고도 하는 붉은박쥐는 정말 앙증맞죠.”

예쁘다는 점만이 박쥐 예찬의 이유는 아니다.

“박쥐는 주로 밤중에 곤충을 잡아먹고 살죠. 그런데 야행성 곤충의 80%는 해충입니다. 작은 박쥐 한 마리가 여름 하룻밤에 모기를 5000마리나 먹어 치운다고요. 박쥐가 없으면 동굴 생태계도 끝장이에요. 동굴에 사는 거의 모든 생물이 박쥐의 배설물에서 영양분을 얻는 걸요.”

그와 박쥐의 첫 인연은 경희대 박사 과정 시절 은사의 연구 권유를 받으면서부터. “북한은 이미 박쥐에 관한 기초 조사가 다 되어 있는데 우리만 뒤져 있다고 하시더군요. 해봐야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주로 동굴에 서식하면서 밤에만 다니는 박쥐를 쫓아다니기가 쉽지는 않았다. 폐광에 들어갔다가 갱도가 무너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동굴 입구만 찾아다니다 간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예쁜’ 박쥐를 미워하는지 물어봤다.

“뱀과 더불어 박쥐를 악의 상징으로 묘사한 서양문화의 영향이 커요. 흡혈귀로 묘사한 공포 영화나 만화도 있더군요. 그렇지만 동양권에서 박쥐는 행복과 장수의 상징이었습니다. 박쥐 문양을 넣은 가구며 옷도 조선 후기엔 많았죠.”

그는 “흡혈 박쥐도 있지만 사람에게는 거의 해를 주지 않으며, 그나마 우리나라엔 단 한 마리도 없다”고 못박았다.

이 책에는 산업화 이후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 박쥐의 모든 ‘정보 파일’이 담겨 있다. 교미 이후 겨울잠을 잔 뒤 봄에야 수정을 한다는 특이한 박쥐의 ‘사생활’도 눈길을 끈다. 집에 잘못 들어온 박쥐는 한 번 길러 볼 만하다며 사육법도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박쥐 사랑을 한껏 담은 그의 마지막 당부.

“오늘날 박쥐의 최대 천적은 사람입니다. 말려서 한약재로도 많이 팔리고 있는데, 말린 박쥐의 성분은 쥐나 두더지와 다를 바 없어요. 곤충을 잡아먹는 탓에 농약 성분도 많이 검출되죠. 그러니 제발 박쥐를 그냥 놓아두세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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