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경제의 충돌]市場논리앞에 文化는 숨막힌다

  • 입력 2000년 12월 4일 19시 04분


문화적인 사안을 경제논리로 푸는 것이 바람직할까. 정부가 경제논리를 내세워 문예진흥기금 모금을 조기 종결키로 한데 이어 도서정가제 도입 제동, 미술품 양도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 부과 등을 추진하면서 문화계와 잇따라 충돌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이 ‘문화대통령’을 자임하며 출범했던 현정부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는지, 2회에 걸쳐 현상을 긴급진단하고 해결책을 알아본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회장 이성림) 산하 10개 단체는 정부의 문예진흥기금 조기 폐지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출판계는 도서정가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미술계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 예정인 미술품 거래에 대한 과세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들이 문화적인 문제를 규제개혁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편집자>

◆ 문예진흥기금 모금 조기 종결

기획예산처는 2004년말 폐지키로 했던 문예진흥기금 모금을 2002년 말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처는 또 이미 조성된 문예진흥기금도 방만한 운영을 막기 위해 공공기금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예술인들은 그러나 김대통령의 공약과 1년전 정부의 결정대로 2004년까지 4500억원의 문예진흥기금을 조성해야 문화예술계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 계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를 앞당길 경우 연간 200억원의 지원이 줄어 문화 예술계의 창작환경이 열악해지고 결국은 국민의 문화향수권도 위축 된다는 것. 문화계는 또 민간자율로 운영되는 문예진흥기금을 공공기금화할 경우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불가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1973년부터 극장 공연장 고궁 등의 입장료에 6.5%를 부과해 모금하기 시작한 문예진흥기금은 지난해까지 3663억원을 조성했으며 97년 312억원, 98년 499억원, 99년 500억원 등 27년동안 모두 3938억원을 문화예술계에 지원했다.

◆ 도서정가제 도입

문화관광부가 8월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입법예고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정위는 책값 할인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에 어긋난다며 문화부에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다. 책도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생산자가 아니라 시장논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논리다.

그러나 문화부와 출판계는 정신적인 양식을 담는 책을 공산품과 같이 취급해 정가제를 폐지할 경우 중소서점의 연쇄 도산에 따른 유통대란과 함께 학술서적 등 양서(良書) 출판이 급속히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문제는 특히 일반서점과 인터넷서점 간의 대결 양상으로 번져 더욱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50여개가 넘는 인터넷서점들이 책값을 10%이상 할인판매하면서 급성장하자 일반서점들이 정가제를 내세워 인터넷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출판사에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인회 소속 단행본 출판사들이 인터넷서점에 책 공급을 거부하자 인터넷서점들이 공정위에 담합이라며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미술품에 대한 과세

2001년 1월1일부터는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해 종합소득세가 부과된다. 미술품의 양도소득세 과세 방침은 90년 12월 소득세법 개정 때 확정됐으나 미술계의 반발로 그 동안 네차례나 시행이 유보돼 왔던 사안.

미술계는 미술품 양도차익에 과세할 경우 거래 부진으로 미술시장이 붕괴되고 창작기반도 와해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술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 33명이 미술품에 대한 종합소득세 부과 조항을 삭제토록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형평성을 내세워 미술품 매매 소득에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법 개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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