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빵굽는 엄마' 정주연씨 "사랑을 반죽해요"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53분


독일에서의 유학시절. 그가 묵고 있는 독일인 집에서 엄마와 아이가 쿠키를 굽고 있었다. 엄마는 밀대로 반죽을 밀고 아이는 모양틀로 별모양 인형모양의 쿠키를 찍어내고. 오븐에 쿠키를 넣고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테이블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불렀다.

“충격이라고 할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쿠키를 구워주는 게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어요. 그 맛있는 냄새와 따사로움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던 정주연씨(32)는 그 다음부터 ‘빵 굽는 언니’가 됐다. 직접 만든 빵을 친구들이 모인 식탁 가운데 놓으면 모두들 입이 벌어졌고 분위기는 따뜻하게 바뀌었다.

“빵 구워주는 것만큼 작은 정성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없었을 정도예요.”

그는 지금 ‘만들어주세요. 엄마의 사랑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홈베이킹회사 (주)브레드가든의 기획실장이다.

◇취미로 하다 남편과 재료점 차려

독일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이영진씨(36)와 92년 돌아와 충남 대덕에 자리잡았다. 남편은 원자력안전기술원 연구원이었고 정씨는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빵 만들어주는 것으로 행복을 삼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빵 만드는 일이었거든요. 한번 맛보고 나면 너무 맛있다면서 또 만들어달라,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어요.”

그런데 독일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빵과 케이크 만들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전문상가엔 가정용 소포장이 없어 불필요하게 많은 양을 사야 했다.

‘그럼 우리가 홈베이킹 재료 전문점을 만들면 어떨까?’

정씨는 95년 대덕아파트 한편에 자그마한 홈베이킹 재료전문점 ‘브레드가든’을 열었다. 빵을 만들어 돈 버는 것 자체보다 ‘갓 구운 빵이 있는 가정문화’에 관심 있던 남편이 97년 연구원자리를 접고 정씨와 함께 ‘빵 만들기 전도사’로 나섰다.

좋아하는 일을 비즈니스로 삼게 된 정씨는 “엄마가 빵을 굽는다는 것이 집안을 얼마나 바꾸어놓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시댁에 케이크를 만들어갔더니 생전 빵을 안 드시던 시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더라는 얘기, 남편 출근 때 쿠키를 싸주었더니 회사에서 주가가 올라갔다는 얘기, 아이가 ‘난 엄마가 우리엄마여서 참 좋아’하더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어요.”

사실 떡을 만들어도 마찬가지여야 마땅할 터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떡을 어디 그리 좋아하나.

초등학교 1학년인 정씨의 아들 반석이도 어려서부터 빵 만드는 일을 봐 와서인지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지 잘한다. 레고 조립이며 색종이 접기며….

“유럽에선 밀가루반죽과 치즈반죽을 많이 만져본 애들이 인성발달에서 앞선다는 연구도 있대요.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봤다는 것 말고도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낀다는 점이 그런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요?”

◇케이크-쿠키 만들기 강좌도 열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자리잡은 브레드가든에서는 집에서 간단하게 빵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판다. 독일의 닥터 웨트커와 루푸에서 수입한 재료들이지만 값은 비싸지 않다. 헤즐넛케이크 초코칩케이크믹스가 4000원씩, 우유만 넣으면 생크림이 되는 생크림믹스가 2500원, 끓는 물에 3분카레처럼 봉지째 넣기만 하면 초콜릿이 되는 제품이 2500원. 이스트도 한번 쓸 분량씩 포장돼 있어 낭비도 없고 간편하다. 1500원.

이곳에선 화∼토요일 오후 2시 케이크만들기 강좌도 연다(이번주엔 화목토요일만). 선착순 25명 참가비 5000원. 12월 매주 목요일엔 크리스마스 빵과 쿠키 특강이 예정돼 있다. 정씨는 “빵으로 행복을 구울 수 있다는 건 참 기분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02―594―2703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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