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곳에 사는가/일산]정발산-호수공원 '멋이 절로'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54분


79년 현재의 일산신도시에서 도자기 공장을 시작했던 김태욱씨(55·우일요 대표)는 일산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해온 산 증인이다. 지금은 신도시 내 60평형 빌라에 살면서 파주시로 옮긴 도자기 공장으로 자유로를 따라 출퇴근하며 일산의 맛과 멋을 두 배로 즐기고 있다.

78년 일산으로 먼저 이사온 선배의 소개로 이곳에 처음 와 본 그는 한눈에 도자기 공장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야트막한 구릉과 차진 흙, 맑은 공기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현재 건설기술연구원이 들어서 있는 당시의 주소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구웠다.

10년 넘게 풍성한 인심과 넉넉하기만 한 자연 속에서 가마 불지피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신도시 개발 발표와 함께 이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산에 머물고 싶어 모든 공장들이 떠날 때까지 버티다 주변 땅이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92년 3월에야 파주시로 공장을 옮겼다.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었죠. 개발도 좋지만 그 좋은 언덕과 실개천을 다 없앴어야 했는지….”

그는 파주시로 공장을 옮기면서 마을도로와 연결되는 300여m 진입도로를 비포장으로 놔둘 만큼 원형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한다.

신도시가 들어선 지금에도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옛 추억의 아쉬움 속에서 군데군데 숨어 있는 일산의 맛과 멋을 찾고 있다. 물론 요즘은 엉뚱하게 들어선 러브호텔이나 유흥업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맛과 멋을 찾는 재미가 여간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

호수공원, 집들과 맞닿은 정발산, 느티나무 회화나무 복자기나무들로 꾸며진 신도시 한 가운데의 중앙로 등은 그가 맛과 멋을 찾는 기본 골격이 된다.

모든 구릉이 삽질에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정발산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은 자연과 어울릴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원들의 상여금을 삭감한 뒤로는 한때 열광적으로 매달렸던 골프도 그만두고, 한동안 마음 한편에만 자리잡았던 음악감상을 그의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올렸다. 집 거실은 물론 공장 3층에도 대형 스피커가 달린 오디오를 장만했다.

아들과 딸은 군복무와 미국 유학으로 각각 집을 떠나 부인과 둘이서 큰 집을 지키고 있지만 그의 인생과 다름없는 도자기 사업, 음악, 그리고 신도시 속의 자연미를 느끼는 재미에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최근엔 ‘일산을 사랑하는 100인 위원회’에도 참가해 본격적인 문화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일산엔 아직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멋이 남아 있어 평생을 이 곳에서 살 계획”이라며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자연미와 인간미가 함께 하는 일산의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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