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장례문화]장례식장 호텔 뺨치네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9시 16분


‘어, 여기가 아닌가?’

14일 고교 동창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은 이승범(李承範·33)씨는 자신이 엉뚱한 건물에 들어온 줄 알았다. 깨끗한 복도, 환한 조명, 넓고 쾌적한 공간 등 마치 박물관이나 고급 미술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새로운 개념의 ‘21세기형 장례식장’이 등장하고 있다. 신개념 장례식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음지’에서 ‘양지’로의 탈출을 꼽을 수 있다. 빈소를 어두침침한 지하가 아닌 환한 지상으로 옮긴 것이다. 7월 새 단장한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은 지상 2개층에 11개 빈소를 차렸다. 21일부터 운영에 들어가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도 지상 3개층에 14개 분향실을 준비했다.

건축사무소 오퍼스 우대성(禹大性·32)대표는 “장례식장은 이제 더 이상 혐오 시설이 아니다”며 “최근 장례식장은 자연 채광을 최대한 이용, 밝고 깨끗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장 실내를 호텔처럼 깨끗하고 고급스럽게 꾸민 것도 새로운 현상. 2년전 새 단장한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은 원목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은 약 3억원을 투자해 대리석과 고급 체리목을 사용하는 등 실내를 고품격으로 꾸몄다.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은 연기를 모아 밖으로 배출하는 중앙집중식 대기시스템을 도입해 빈소의 향냄새를 없앴다.

음식도 호텔 수준이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전문음식업체에 위탁해 음식 일체를 유족에게 공급하고 있다. 고려대병원의 장례식장은 아예 한식요리의 오랜 전통을 가진 세종호텔을 통해 제사상과 조문객 접대에 쓰일 음식은 물론 장지에서 사용할 음식까지 주문을 받아 제공한다.

경황없는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사망 이후 발인까지 완벽한 ‘종합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요즘 장례식장의 새로운 흐름. 장례식장 직원이 연락을 받으면 바로 유족을 방문해 운구 안치 부음 부고 영정사진 분향실차림 장례일정 음식 접객 입관 발인 등 모든 장례 문제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해준다.

일가 친척이 없는 유족이나 핵가족이라도 아무 불편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또 주민등록사진 한 장만 가져오면 확대해 영정사진을 바로 제공하고 장지에서 먹을 도시락도 준비해준다. 묘를 쓰고 나서 3일 뒤 묘소가 안전한지까지 보살펴준다.

서울시 노인복지과 배영철(裵永哲·47)팀장은 “요즘에는 대형 병원의 장례식장이 거의 직영화되어 장례용품을 강매하거나 저승길 노자를 요구하는 관행도 거의 사라지는 등 장례식장의 이미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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