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11월25일 이곳에서 열리는 기획전 ‘간판을 보다’를 준비중인 조현신교수(40·여·국민대 테크노디자인 대학원)를 비롯, 김영배(42·간판디자이너), 김상규(31·제품디자이너), 김명환(41·큐레이터), 최범씨(42·디자인평론가). 이들 간판 전문가 다섯명은 “서울의 간판 대부분이 주변 환경을 무시한 채 튀는 데만 급급할 뿐”이라면서 “도시 전체가 이같은 간판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했다”고 말한다.
이 기획전은 ‘인간 환경 기호’ ‘간판의 오늘’ ‘좋은 간판을 찾아서’ ‘간판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 5개 코너로 구성된다. 각종 사진과 비디오 등의 작품을 통해 나쁜 간판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도시 환경과 조화되는 간판 문화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
이들은 서울 간판들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같은 기획전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마다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 한데 뭉친 것은 도시 환경의 ‘숨결’인 간판 문화가 이대로 방치돼서는 안된다는 신념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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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울 간판들이 이기주의와 과시 등 왜곡된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교수는 “80년대에 간판의 규격이 풀리면서 업종과 규모에 상관없이 건물마다 한 뼘의 틈도 없이 들어찬 간판들은 ‘내가 먼저’라는 이기심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외환위기 이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반영하듯 간판의 숫자가 늘고 크기도 육중해진 반면 이를 규제할 관계법은 완화 위주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번 기획전 준비에 3개월을 보냈다. 조교수는 직접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서울 시내 곳곳을 발로 뛰며 사례를 수집했고, 10년간 국내외 도시들의 간판 문화를 섭렵해 두 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김영배씨는 무심코 가게 간판을 찍다가 주인으로부터 면박당한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들은 무엇보다 인간의 정서와 도심 공간의 여백을 고려한 간판 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또 “우리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간판 디자인’을 특화시켜 전문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