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제3회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트페어]전시장 곳곳서 탄성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46분


60∼70대 할머니 모델의 ‘풍만한’ 몸을 카메라에 담은 핀업사진, ‘혓바닥 교환’을 통해 남성의 동성애를 표현한 조각. 하반신이 벗겨져 능욕당한 채 치부에 유혈이 낭자한 엽기적 장면을 찍은 컬러 사진과 분홍색 수영복 웃통을 벗어젖힌채 가슴이 보일락 말락 타월을 걸친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실핏줄과 소름까지 놀랍도록 정밀하게 묘사한 폴리에틸렌 작품.

◇ 로버트 드니로 아버지 작품도

지난달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 포트 메이슨센터에서 열린 제3회 샌프란시코 국제 아트페어(SFIAE) 현장. 할머니 모델의 핀업사진 주변에는 중년부인들이 몰려 탄성을 지르고 있고, 폴리에틸렌 작품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는 기자에게 한 할머니가 “집에 데려가고 싶으냐”고 농을 건다.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아버지가 그린 회화를 바라보던 한 신사는 “저게 바로 그 유명한 배우의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냐”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또 검정색 상의 9벌에 수화기와 여자 웃음이 녹음된 테이프를 숨겨놓아 한없이 주절거리도록 한 작품과 총알과 총 뼈등을 소재로 교회 첨탑을 만들어 미국 총기문화의 폐해를 고발한 작품도 있었다.

◀ 행사장 내부.

착시를 이용해 그림속 풍경이 움직이듯 보이게 한 병풍식 그림, 낚싯줄로 연어껍질을 꿰매 색을 입힌 작품,블라인드 앞 뒤에 클린턴 힐러리 르윈스키 소형사진 수백장을 절묘하게 인쇄해 ‘지퍼 스캔들’을 풍자한 작품, 40여명의 모델을 창에 내세워 찍은 사진도 기발한 발상이었다.

또 870개의 플라스틱 인형을 알루미늄 선반 다섯칸에 빼곡이 올려놓고 제목을 통해 이중 하나가 스위스 사람임을 밝힌 ‘보물찾기식’ 작품, 사진으로 착각하게 만든 포토 리얼리즘 계열의 회화, 전화번호부를 잘라내 두상과 손을 깍아낸 작품, 미국 역대 ‘공식’ 퍼스트레이디 42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석고접시에 새긴 작품 등도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기발한 미술품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실험적 작품들로 채워지는 반면, 소장가와 딜러를 주대상으로 하는 아트 페어에는 장식성이 높고 부담이 없는 회화나 소품 조각이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 고트프리트 헬른완인, '용의자들', 2000. 사진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회화작품이다.

◇사진보다 더 사진같은 그림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는 미국 화랑업계의 거물인 토마스 블랙만이 정보 통신 벤처사업으로 돈을 번 실리콘 밸리의 신흥 부호들을 겨냥해 3년전 기획한 것. 첫해에는 실리콘 밸리 일대 번호판을 단 고급 차량의 행렬이 줄을 이었으나 최근들어 닷컴기업의 거품이 빠지면서 다소 부진하다.

전시작품의 가격 총액이 수천억원을 넘는데다 관람객수가 2만명을 넘어 대중화에는 일단 성공했다. 이에따라 장소를 대형 할인매장 같은 부둣가 창고에서 실리콘 밸리 중심의 컨벤션 센터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는 캐나다 콜럼비아 영국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러시아 스페인 11개국 96개 화랑이 참가했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포룸, 말보로, 낸시 호프만 등 1급화랑을 비롯해 21개 화랑이 나왔고 샌프란시스코에서 20개, 시카고에서 8개,LA에서 6개 화랑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박영덕화랑과 박여숙화랑이 참가, 10만달러 안팎의 판매실적을 거뒀다. 참여작가는 조성묵 안병석 함섭 김창영 이영학 박수룡 김혜림 도윤희(박영덕화랑), 정창섭 박서보 전광영 홍정희 김강용 최병훈 정종미 이진용씨(박여숙화랑).

대형화랑은 각각 우리돈으로 30억∼50억원 어치의 미술작품을 내놓았다. 뉴욕의 포름화랑은 80여점 260만달러 상당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 작품가는 수백 수천달러 짜리 판화나 사진작품에서 수십만달러를 호가하는 회화작품까지 천차만별. 외국 화랑 중에는 콜럼비아 보고타의 엘 뮤제오화랑이 인기를 끌었고 판매실적도 괜찮았다.

◇한국등 11개국 96개 화랑 참여

조각가로 널리 알려진 프랭크 스텔라의 회화 대작과 장 뒤뷔페의 회화 1점이 각 25만달러에 나와 있었고, 마티스와 피카소의 펜화가 진품을 보장한다는 내용과 함께 각각 17만달러와 16만5000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로버트 드니로 부친의 회화는 점당 15만달러나 돼 그의 역량을 짐작케 했고, 나단 올리베이라의 대작 회화 한 점도 12만5000달러에 나왔다. 무하마드 알리가 1965년 소니 리스튼을 녹다운시킨 뒤 떠벌이는 유명한 컬러사진은 4000달러, 베이브 루스의 은퇴식 장면을 담은 흑백사진은 1200달러였다.

샘 프랜시스의 대작 회화 한 점이 29만달러에 팔렸고, 로댕의 발자크 두상 한 점은 15만달러에 임자를 만났다. 동으로 넝쿨나무 같은 질감을 살린 뼈대를 만들어 제작한 말모양의 작품은 8만달러, 중국 동한시대(서기 25∼220년)의 자기로 만든 골동품 개는 2만2000달러에 팔렸다. 거래가 외에 8.5%의 세금과 운반비를 고객이 추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 출품작의 경우 대가들의 국내 가격이 너무 비싸 거래 실적이 전혀 없었고, 중진작가의 경우 국내 지명도와 국제시장 상품성에 큰 차이가 있는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샌프란시스코〓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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