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조 華城행차 병풍책으로 부활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51분


조선의 문화르네상스기로 불리는 18세기말 정조시대. 당시 문화 이벤트의 백미(白眉)는 단연 1795년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였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기획했던 행차. 그 모습을 담은 ‘반차도(班次圖)’가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상품으로 최근 다시 태어났다. ‘반차도’는 국가 행사를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정조 사거(死去) 200주년을 맞아 서울대 한영우(한국사) 변창구교수(영문학)가 효형출판과 손잡고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

이들이 만든 ‘반차도’는 화성행차 전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흑백 판각화를 밑그림으로 하고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두루마리 ‘반차도’를 참고해 한교수가 6개월에 걸쳐 직접 채색했다. 한글 설명과 영문 설명을 함께 실었고 영문 번역은 변교수가 맡았다. 1700명의 인물과 800여필의 말이 등장하는, 길이 15m의 대작이다.

38폭 병풍처럼 만들고 고졸한 멋이 풍기는 표지를 덧붙였다. 접으면 책이 되고 펼치면 멋진 그림 병풍이 되는, 병풍식 책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수작업으로 제작한다는 점. 서울 인사동의 한 표구상에서 일일이 손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이 15∼20개에 불과하다. 효형출판측은 “완벽한 색상을 내기 위해 인쇄를 3번이나 중단하기도 했다. 종이도 한솔문화재단이 최근 개발한 전통 한지를 사용하는데 그것도 공급량이 적어 애를 먹고 있다”면서도 “전통문화상품의 세계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한교수는 “이런 웅장한 그림은 외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이를 계기로 서울에서 수원까지 화성행차를 재연하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교수가 ‘반차도’ 채색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규장각 관장으로 있던 1995년. 규장각 ‘반차도’는 사람과 말의 뒷모습만 나온데다 그 색도 상당히 흐렸기 때문이다. 일일이 대조해보며 색을 입히느라 6개월이나 걸렸다.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등 당대 일류 화가들이 그린 ‘반차도’는 장엄하고 당당하다. 정조가 탄 어가와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 북을 두드리며 기세를 올리는 별기대, 오색찬란한 깃발이 나부끼는 깃발부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악대, 위풍당당한 기병, 그리고 나인(궁녀)까지, 1700여 얼굴 표정이 하나하나 다 다르고 개성이 가득하다. 정조시대 문화의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자세하고 친절한 영문 번역으로 외국인들도 행차의 내용과 흐름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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