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재파업 이모저모]병원 "난처" 약국 "썰렁"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0분


▼군병원/늘어난 민간환자 돌보려 '분주'▼

11일 강원 원주시 가현동 국군원주병원에는 60여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민간인이 몰려 전날에 비해 25%가 늘어난 수치. 이날 의료진은 군인환자와 함께 민간인 환자를 돌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최성봉(崔成奉·36·소령)진료부장은 이날 “원주 시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원주의료원과 원주보건소에는 안과가 없어 어제까지는 안과환자가 조금씩 오기는 했으나 의료계 전면폐업 첫날인 오늘은 내과 정형외과 등에 민간인 환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전면폐업 이후 군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민간인 진료 첫날인 8일 13명에 불과했지만 이날 전국 15개 군병원에는 300여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았다. 6월 1차 의료계 폐업 때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난 수치다.

군병원들은 “1차 폐업 때 이용해본 환자들이 친절하다며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눈병에 걸린 김정옥(金貞玉·41·신림면 송계리)씨는 “처음에는 딱딱하고 불친절할 것 같아 겁을 많이 먹었는데 부대 입구에서 진료실까지 안내해주는 등 친절하게 잘 치료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군병원 군의관들은 의료계 폐업사태와 관련, 의사이기 이전에 군인이라면서 말을 극도로 아꼈다. 그러나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최부장은“군인이 무슨 개인적인 생각이 있겠느냐”면서도 “하루빨리 협상이 타결돼 국민이 불편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일반병원/경영 악화-주위 눈총에 '난처'▼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침상 620개 규모의 S종합병원 박모원장(63). 의료계 전면재폐업이 시작된 11일 병원 간부회의에서 “의약분업에 대해선 여러분과 같은 생각이지만 병원 경영을 위해선 하루빨리 폐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6월 ‘의료대란’ 때 하루 2억원, 이번 전공의 파업으로 축소진료를 하며 1억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 ‘2차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 한 달 인건비 15억원은 거뜬히 날아간다. 사태가 길어지면 월급을 못받은 직원들의 원성이 쏟아질 것은 뻔하다.

각 병원, 특히 중소병원들이 폐업에 따른 경영난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폐업참여가 두렵기만 하다.

350침상 규모인 서울 광진구의 A병원은 6월 폐업 때 하루 손해가 5000만∼1억원이나 됐다. 지금까지 제대로 진료못해 생긴 손실액은 20여억원. 김모원장(55)은 한 달 직원 월급 4억원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이번 달 월급을 제때 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지난달 직원 월급을 못준 중소병원도 숱하다.

병원장들은 환자나 친구들 보기도 겁이 난다. 서울 강남구의 D병원 박모원장(53)은 “친척이나 친구들이 전화로 의사들을 비난한다. 술자리에서도 욕부터 한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의협 인터넷 홈페이지나 PC통신에는 “지금 병원을 꾸려나가고 있는 40대 이상 선배의사들이 의료환경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동네약국/처방전 손님 가뭄 콩나듯 '썰렁'▼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병원 후문의 대학약국. ‘병원 처방 전문’이라는 안내판까지 붙은 2층 대형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썰렁하기 그지없다.

김진수(金進洙)약사는 “의약분업이 전면 실시되면서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이제 병원 폐업까지 했으니 큰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래도 오늘은 병원에서 예약 환자를 진료한 덕분에 간간이 처방전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폐업이 장기화되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의 폐업으로 약국들까지 울상을 짓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임의조제를 할 수 없게 된데다 병의원 폐업으로 처방전까지 발급되지 않아 환자들이 뚝 끊겼다. 1차 의료계 폐업 때는 완전한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전이라 전문 의약품 판매와 조제 등으로 운영에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이 약사들의 말.

이날 대학병원 인근 약국에는 “처방전 없이 조제해줄 수 있느냐”고 전화 문의를 해오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노인 환자가 직접 찾아와 “처방전은 없지만 한번만 약을 지어달라”고 떼를 쓰는 일도 있으나 법을 어길 수도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고 약사들은 전했다.

의약분업으로 가뜩이나 환자가 줄어든 동네 약국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U약국의 약사는 “의원 처방전을 들고 오는 사람 마저 없어 약국문을 닫아야하나 계속해야 하나 의논할 정도”라고 말했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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