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위상 못찾는 '방송위'…권한 커졌어도 제구실 못해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46분


“방송위원회요. 글쎄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한 PD)

방송위원회가 규모나 권한이 크게 달라졌는데 정작 뭘하는 곳인지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자기 밥그릇을 못찾고 있다는 것.

최근 박지원문화관광부장관의 호된 질타를 받은 방송 프로의 선정성 폭력성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박장관은 방송위에 강력한 대책을 촉구했다. 그의 말에는 방송위가 제대로 못해 직접 나섰다는 불만도 섞여 있었다.

의아한 점은 박장관의 진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송위의 분위기다. 한 방송위원은 “언론 주무 장관이니까 당연한 관심 표명”이라고 그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는 심의 규제 권한이 방송위원에게 있고 박 장관이 사실상 ‘월권’을 했는데도 서운하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기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물론 방송위 실무자들 가운데는 “우리가 가진 권한을 충분히 활용했더라면 이런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았다.

특히 TV 3사 사장들이 박장관의 발언이 있은 직후 방송위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진 것도 “수일전 예정된 모임”(김정기 위원장)이라고 해명했지만 그 모양새는 장관이 “나를 따르라”고 외치니까 움직이는 인상이다.

위성방송 컨소시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도 명쾌하지 않다. 그런 탓에 “방송위가 다른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위는 5월초 위성방송 허가 일정을 발표한 뒤 두달반만에 단일 컨소시엄 구성안을 논의하자는 합의를 유도했다. 당초 내세운 일정이나 방침이 일선에서 먹혀들지 않는 탓이다. 방송위 내부에서도 “이해 당사자간의 이견 조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송위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방송위가 7월말 박찬호 경기를 중계하는 경인방송(iTV)의 역외 재전송을 금지하자 시청자들이 “방송위가 무슨 권리로 스포츠를 못보게 하느냐”며 항의 메일을 퍼부었다. 방송위는 법 규정에 따라 조치를 내렸으나 시청자들이 이를 몰랐기 때문.

이런 ‘사태’에 방송위의 대응 방식은 아예 초보 수준이다. 항의가 빗발친 지 5일이 지나서야 시청자들의 이해를 바라는 답신을 띄웠으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이것도 행정 명령의 파급 효과를 사전에 인식하고 홍보 전략을 병행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송위가 새 방송법이후 부여받은 강력한 권한과 역할에 대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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