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을 살리자(下)]구멍난 보존대책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24분


동굴관리가 엉망이다.

개방된 동굴에서는 으레 청태(靑苔)나 건화(乾化), 흑화(黑化) 등 복잡한 원인에 의한 동굴오염이 심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방지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굴훼손을 막기 위한 입굴객 숫자와 개방시간의 제한, 온도와 습도 등의 과학적인 관리도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 삼척시, 강릉시와 평창군 등은 추가로 동굴을 개발해 일반인들에게 개방할 방침이어서 동굴학자와 전문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동아일보 기획취재팀이 최근 동굴전문가 석동일(石東一)씨와 함께 개방동굴들의 실태를 점검한 결과 대부분의 동굴은 이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는 커녕 훼손된 채 방치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관람객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훼손방지▼

개방된 동굴에서는 예외없이 청태와 건화, 흑화 등의 부작용이 확인됐지만 이를 해소하거나 방지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청태는 전등의 발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조명 및 통로등을 고열등에서 저열등으로 바꾼 곳은 성류굴과 고수굴, 환선굴 등 3,4곳뿐이다. 그나마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

센서등을 달면 관람객이 다가갈 때만 켜지기 때문에 청태가 거의 끼지 않지만 이를 단 곳은 성류굴과 고수굴 단 2곳. 그나마 각각 5개와 2개뿐이다. 나머지는 발열량이 많은 백열등 또는 나트륨등이다.

건화나 흑화도 전등이나 입굴객의 체온, 호흡 등으로 야기되지만 이를 줄이려는 조치는 거의 없다. 동굴벽이나 생성물이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 성류굴처럼 물뿌리개를 설치한 것이 고작.

한편 훼손된 자리를 복원한답시고 꼴사납게 경관을 망친 경우도 있다. 노동굴 관리사무소가 도굴꾼들이 종유석과 석순을 모조리 떼어가자 플라스틱으로 ‘모조품’을 만들어 붙여놓은 것.

▼입굴 멋대로▼

동굴훼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안내인들이 입굴객을 20∼30명씩 모아 관람시켜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입굴객을 모아 들여보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한 사람이 오건 두 사람이 오건 순서대로 들여보낸다.

안내인이 없다보니 입굴객들이 동굴을 훼손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방법도 없다. 게다가 훼손 방지를 위한 관람수칙을 알려주는 곳은 전혀 없다. 환선굴만 겨우 입굴 직전에 동굴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동굴연구 부족▼

동굴이 개방이후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 지난해 강원도 원종관(元鍾寬)교수 등이 문화재청에서 의뢰받아 훼손실태를 점검한 것이 고작이다.

청태는 전등의 발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만 발열량이나 온도, 습도와 청태 사이의 구체적인 함수관계는 전혀 연구되지 않았다. 건화, 흑화 역시 전등과 관람객들의 발열로 인한 습도의 저하, 호흡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증가 등이 주요원인이지만 이들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막을 방법은 없는지 등을 아는 학자도 거의 없다.

관람의 적정인원에 대한 연구 역시 마찬가지. 관람객을 제한하고 싶어도 근거가 없는 셈이다. 무작정 관람객을 받다 보니 환선굴은 지난해 하루 1만2000명을 입장시킨 적도 있다.

▼감독 소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동굴의 관리를 감독해야 할 문화재청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63년 성류굴이 개방된 이후 37년이 지났지만 문화재청이 한 일은 지난해 전문가를 동원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공개동굴 8곳에 대한 오염실태를 조사한 게 전부.

외국은 ‘동굴보호법’이 따로 제정돼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다. 우리는 문화재보호법이 있지만 절취나 손상 등의 경우에만 처벌할 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이 없다. 심지어 동굴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의 지시를 받지 않기 위해 동해시 천곡굴처럼 일부러 문화재 지정신청을 미루는 경우마저 있다.

▼지자체 개발 열기▼

동굴은 일단 개방되면 훼손되기 마련이다. 개방동굴의 관리보다 개방 자체를 막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원 삼척시를 중심으로 강릉, 태백시와 평창군, 충북의 단양군 등이 6,7개 동굴을 추가로 개발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게 김일동(金日東)삼척시장 등 단체장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강원대 우경식(禹卿植)교수는 “동굴은 한번 개방돼 훼손되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동굴개방은 학술적 가치와 동굴의 노화상태, 개방시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굴 휴식년제▼

더 이상의 동굴 훼손을 막기 위해 동굴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이 동굴 휴식년제. 일정기간 개방한 뒤 일정기간 폐쇄해 스스로 원상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휴식년제를 실시하는 동굴은 없다. 고수굴이 유일하게 부분적으로 휴식월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휴식월만 실시해도 청태는 물론 건화나 흑화도 상당히 감소하리라는 게 신홍식(申弘植)고수굴 관리소장의 관측이다.

▼관리당국 수수방관▼

종유석은 자연상태에서 1년 내내 자라도 0.4mm를 넘기 어렵다. 탄성을 자아내는 곡석(曲石)이나 석화(石花), 동굴산호 등은 평생 눈여겨봐도 성장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동굴은 억겁(億劫)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귀중한 자연유산인 동굴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종유석이나 석순 등에 이를 부식시키는 이끼가 끼어도 그대로 놔두는 곳이 대부분이고, 이끼가 동굴에 좋은지 나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일부 관리사무소는 동굴을 보존한다며 되레 동굴을 훼손하기도 한다. 이끼를 없앤다며 무쇠솔로 종유석 등을 마구 문지르는가 하면 동굴대상물이나 동굴생물에 치명적인 화공약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입굴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관리인도 거의 없다. 표만 팔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동굴관리인이라기보다 관광지의 ‘매표원’에 가깝다.

현장 관리인들만 문제가 아니다. 동굴들이 원상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지만 문화재청의 담당공무원들은 현장에 실태조사 한번 나간 적이 없다. 98년 문화재청이 만든 ‘동굴보전 관리지침’은 공무원들의 현장답사 한번 없이 급조한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문화재청은 심지어 각 동굴별로 입굴객 숫자조차 모르고 있다가 취재기자의 요청에 따라 뒤늦게 파악했을 정도다.

한번 훼손되면 사실상 영원히 복원하기 어렵다는 천연동굴. 현재의 관리체계로는 그 억겁의 유산을 훼손하고 파괴를 부추길 뿐이다.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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