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할 의료관행]마구잡이 약복용 멈춰야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증손자를 2명 둔 남모씨(82). 평생 육체노동을 해서 근육이 발달하고 약수터에 2시간 가량 걸어가 10㎏짜리 물통을 들고 올 정도로 건강했다.

하지만 5년전부터 허리와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자 집근처 약국에서 관절염약을 사서 복용해 왔다. ‘특효약’이라는 말에 한번 가면 두달치, 석달치 약을 타와서 매일같이 먹었다.

어느날 허리에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에 ‘쿠싱 증후군’진단이 나왔다. 얼굴이 붓고 골다공증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로 관절염약에 들어간 스테로이드가 원인이었다.

주부 이모씨(55)는 20대부터 소화가 잘 안되면 동네의원에서 소화제를 처방받아 먹어왔다. 5년전에는 증상이 심해져서 만성위염 판정을 받았지만 정밀검진은 받지 않고 의사에게 더 강한 소화제를 달라고 요구해서 복용했다.

이씨는 통증이 심해지고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그때서야 종합병원을 찾았다.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결과는 위암4기. 수술과 치료가 불가능해 6개월만에 숨졌다.

의약분업은 이처럼 약을 좋아하고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생기는 부작용을 막자는 제도이다. 의약계인사들은 “이제부터는 의사의 정확한 진료와 진단,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스스로 판단해서 약을 먹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국민은 유달리 약을 좋아하고 믿는다. 가벼운 감기나 조그만 염증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낫게 하기보다 약을 찾고 여성은 몸매 관리를 위해 이뇨제(利尿劑)를 사용한다. 기침약을 몇십알씩 사서 환각제로 쓰는 청소년도 있다.

그러나 ‘모든 약은 독(毒)’이라는 말이 있듯 약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거나 잘못된 약을 쓰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가장 흔한 경우가 감기약 관절염약 안약 피부약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이다.

이대목동병원의 의사 최영아씨는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간 약을 장기복용해서 위궤양출혈, 골다공증에 시달리거나 체내 호르몬 균형이 깨져 쇼크로 숨지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사제 남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 미국에서 오래 살다온 직장인 김모씨는 “우리 아이들이 10년간 맞은 주사는 예방백신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의사들이 주사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조르고 나아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사와 영양제를 놔주는 ‘주사 아줌마’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병원의 주사제 처방률은 54%를 넘는다.

이처럼 약과 주사제를 즐기지만 실제로 병을 예방하는데 소홀한 게 우리 국민이다. 어설픈 상식으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습관이 뿌리깊어 병을 키운 뒤에야 병의원에 간다.

동네의원은 왠지 불안하다며 종합병원의 유명의사만 찾아다니는 ‘의사쇼핑’ ‘병원쇼핑’현상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다. 종합병원에서는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불가피한 것을 알면서도 유명의사만 찾아다니는 환자들이 많다.

의료계가 집단폐업을 벌이며 내건 요구중 의원-병원-종합병원의 완전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라는 것도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환자 자신에게도 유리하고 사회적으로는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의사회 김도석회장은 “동네의원 활성화 등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확립해서 단순 질환자가 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아야 동네의원도 살고 종합병원도 중환자를 충실히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소비자의 입장에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는 징후가 발견되면 약국보다 먼저 동네의원을 찾아야하고 이를 생활습관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를위해 단골병원이나 가정주치의를 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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