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람·세상]정은령/'活版'고수 老인쇄공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34분


서울 삼각지 로터리 봉덕인쇄소 조익제사장(64)과 만리동 고개 성실인쇄소 윤춘기사장(61). 견습공으로 시작해 한평생 인쇄 외길을 걸은 두 선후배는 요즘 심각하게 '회사 합병'을 논의 중이다. 그들의 합병은 '활판인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활판(活版)인쇄'. 납활자를 짜서 판을 만들고 거기에 잉크를 묻혀 인쇄를 하는 방식.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인쇄소마다 활판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전자출판과 오프셋인쇄가 도입되면서 납활자도 활판도 급격히 사라져갔다. 제작비용이나 생산력에서 오프셋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깨알같은 활자뭉치에서 필요한 활자를 집어내던 문선공들의 신기(神技)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게 불과 10년 안쪽의 일이다.

활자를 짜서 판을 만드는 조판소는 2년여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이제 신간은 활판으로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다. 그나마 옛날에 활판으로 만들어진 책의 재판(再版)을 찍어줄 수 있는 인쇄소도 봉덕, 성실 두 곳이다. 이제 남은 활판인쇄기계는 두 인쇄소에 남은 3대. 그나마도 주문물량이 줄어 합병하면 1대만 남기고 2대는 또 부숴 고물로 넘길 수 밖에 없다.

두 원로인쇄인이 선뜻 활판인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못나서 지금껏 붙들고 있었겠지요.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기계를 부술 용기가 안 납니다."

경력 10년 이상의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활판인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필름 위에 잉크가 스치고 지나가 매끈하기만한 오프셋인쇄와는 달리 활판인쇄 책에는 활자에 잉크가 묻어 꾹 찍힐 때의 압력이 그대로 요철로 남는다. 그래서 고참 편집자들은 "활판인쇄 책을 만들 때는 문자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오프셋은 기계 몫이지만 활판은 사람 몫"이라고도 한다. 활자마다 제대로 잉크가 묻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시험판을 내고 글자마다 일일이 손으로 농도를 조절하는 공정을 통해 인쇄가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이런 '손 맛'의 매력 때문에 도올 김용옥처럼 "내 책만큼은 꼭 활판인쇄로 찍고 싶다"는 열렬한 찬미자도 있다.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등 자신의 책 판권란을 통해 '활판으로 인쇄된 책을 귀하게 여깁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을 정도다. 이밖에도 문학과지성사, 기독교문사, 삼중당, 탐구당, 을유문고 등이 지금껏 활판인쇄 책을 찍는 출판사들. 그러나 이 소수의 '경배자들'만으로는 더 이상 공장을 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명색 한국이 금속활자의 종주국인데 활판인쇄가 이대로 사라지는데 대해서는 누구 하나 대책을 내놓는 사람이 없습니다. 변하는 세월이야 거스를 수 없지만 조판소, 인쇄소 한 개씩이라도 남겨 활판인쇄가 무엇인지라도 후세에 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노(老) 인쇄공을 만나고 온 밤, 새삼 이제는 누렇게 변색된 활판인쇄의 책들을 꺼내 보았다. 종이 위에 울룩불룩 찍힌 글자들, 그 '문자의 몸'을 만져보았다. 그러다 시 한 구절에 마음이 걸려 그만 책장을 덮고 말았다.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박라연의 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중)

정은령<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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