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연한 '50년 관례' 재고 여론 높아

  • 입력 2000년 5월 23일 18시 59분


올해 3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 대해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물론 지금은 다시 보존하기로 했지만). 당시 이유의 하나는 삼청각이 1972년 세워져 30년도 채 못됐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연륜이 너무 짧다는 말이다. 이 건축물이 만일 조선시대 것이었다면 그 판단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문화재의 반열에 오르려면 과연 몇 년을 ‘묵어야’할까?

답은 50년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명문화된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례다. 50년이 넘는다고 해서 모두 문화재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다. 지금은 없어진 조항이지만 전통건조물은 50년 이상된 것을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광복 이전 것을 전통건조물로 보고 있다. 50년 이상된 유물을 해외로 반출하려면 공항 항만에서 문화재감정관의 감정을 받아야 하는 것도 50년설의 관례를 뒷받침해준다. 국가 지정문화재는 모두 1950년 이전 것이다. 가장 나이가 어린 ‘백범일지’(보물1245호·1943)도 50년을 넘겨 1997년에 지정됐다.

이 ‘50년 관례’가 재고의 대상이 되고 있다. 23일 열린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세미나에서 30년 정도로 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다수설로 제기된 것이다.

특히 건축물은 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인한 훼손 및 철거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50년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실장은 “‘50년 문화재’란 통념은 무너져야 한다. 급속한 개발로 없어지는 건축 문화재가 많기 때문이다. 85년 준공된 서울 여의도 63빌딩도 문화재 지정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동 목원대교수도 “근대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기 위해선 외국의 ‘근대건축 30∼40년 경과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역시 2차대전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문화재 지정의 시간 제한에서 벗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면 지금 당장 63빌딩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상해 성균관대교수는 “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앞서 ‘예비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도 하고 앞으로 문화재 지정을 예고하는 제도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화재청 이춘근 기념물과장 역시 이에 동의했다.

8올해부터는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인간문화재)의 ‘50세 이상’ 연령제한도 없어졌다. 이제 우리 문화재도 한층 젊어질 모양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