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 박상우지음/씨엔씨미디어 펴냄▼

▼STAGE1 '게임'을 대접하기 위한 첫 비평서▼

게임에 대한 관심은 ‘돈’에 쏠려 있다. 잘 하면 꽤 벌고, 잘 만들면 왕창 버는 것. ‘돈독’이 오른 게임은 저잣거리의 오락일 뿐, 문화로 승격되지 못했다. 돈은 있어도 상류층에는 못끼는 졸부짝이다.

이 책은 천시받는 게임에 합당하게 대접하려는 첫 비평서란 점에서 의미 깊다. 게임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책은 보기 드물다.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게임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첫 번째 작업’이다. 20여년간 500개 가까운 게임을 섭렵한 저자는 도발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게임은 세계를 혁명하는 힘’이다.

▼STAGE2 현실의 좌절을 설욕하는 통쾌함▼

게임은 즐거운 꿈이다. 게임 속에서는 무엇이건 가능하다. 천사 같은 여자와의 사랑 혹은 섹스, 돈과 권력욕, 차마 얘기하기 힘든 금단의 욕망까지.

예컨대 ‘문명2’를 플레이해 보자. 한 줌도 안 남은 자본주의자들이 점령한 도시를 빨치산 저항군이 되찾는 게임이다. 게이머가 최후의 자본가 앞잡이를 무찌르면 ‘세계 공산주의 만세’ 함성과 인터내세널가가 울려퍼진다.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에겐 찐한 감동이 밀려올 법하다.

이런 욕망 충족이 게이머를 몰입하게 만든다. ‘드래곤 퀘스트’ 같은 RPG(Role Playing Game)이 대표적인 경우다. 게이머는 자신의 분신(아바타)을 통해 다양한 인물과 협력하고 싸우면서 힘을 키워간다. 캐릭터와 자연스레 일체감이 형성되고 게임은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저자는 또 ‘제작자의 손을 떠난 게임은 게이머에 의해 주체적으로 진화를 거듭한다’고 말한다. RPG는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어떤 스타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내용을 즐길 수 있다. ‘갤러그’의 버그를 이용한 일명 ‘총알빼기’ 수법 같은 것도 그렇다. 아예 게임코드를 변형시켜 자기가 원하는대로 변형하기도 한다. 결국 게임의 몰입은 적극적인 개입을 뜻한다.

하지만 게임속의 자폐적 경험이 현실은 아니다. 저자는 ‘게임의 세계는 비현실적이란 이유로 비난받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장 큰 힘이다’고 주장한다. 진짜 현실 못지않게 현실이라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또 게임을 하면서 맛본 자유는 역으로 현실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한다. 게임을 통해 현실의 무게가 사라진다. ‘게임의 혁명성’이란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뜸을 뜻한다.

▼STAGE3 경쟁적인 편집증에 대한 경고▼

하지만 게임의 이상형은 현실에 의해 오염된다. 저자는 ‘소유욕과 완전함에 대한 집착’이 제일 먼저 침투한다고 본다. 게임 속에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 헤매다 보면 게이머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포켓몬’ 게임어 100여 몬스터를 모두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경쟁적인 편집증은 게임제작사의 얄팍한 상술이다.

저자는 게임상의 경쟁이 끔찍한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승리에 대한 굶주림이 해소될리 없다. 이런 불유쾌한 전염병은 네트워크 게임에서 물을 만난다. 약한 게이머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소위 ‘PK’(Player Killer) 같은 사이버 살인자가 그렇다. 인종과 민족간의 증오도 게임속에 고스란히 복제된다. 게임중에 일본 게이머가 한국게이머의 아바타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면 ‘쪽발이 사냥’에 나선다. 저자는 게임이 현실의 불유쾌한 카피본으로 전락하는 점을 우려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게임에서 희망의 싹을 찾는다. ‘게임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다. 즐거움을 미끼로 지배자 행세도 안한다. 자유로워지려면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368쪽, 9000원

<윤정훈기자> 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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