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쉬 무용단 공연]춤-연극경계 넘나든 환상무대

  • 입력 2000년 4월 4일 19시 51분


3일 LG아트센터 개관 기념공연으로 초청된 독일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그 누구도 무용이 어느 현대 예술분야 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진 장르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탄츠테아터’(Tanz Theater)라는 장르를 제시한 독일 부퍼탈현대무용단의 피나 바우쉬는 최첨단의 테크놀로지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일상생활, 나아가 세계의 정치도 무용가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몸으로 하는 행위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극장 안에 들어서면 우선 관객은 무대 가득히 깔려 있는 카네이션에 압도당한다. 초반에는 이 아름다운 꽃밭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다니던 무용수들이 작품이 진행되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몰두하게 되고, 마침내 바닥은 무심하고 난폭한 네 마리의 셰퍼트를 포함한 폭군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진 상태가 된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카네이션’도 일정한 줄거리가 없는 여러 상황들이 콜라쥬 형식으로 편집되었다. 남성의 역할에 지친 남자들, 집단의 광기에 의해 소외되는 개인들, 구속받고 싶은 소시민들, 자기 비하 중독자 등이 몸 전체로 그리고 말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번 서울 공연에는 20년 전 초연 멤버들이 참여해 작품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이들의 동작은 지극히 간결하고 일상적이지만 아주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어, 정말 필요할 때는 이들이 어떤 어려운 기교라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

이 무용단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현지의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무용단 속에서 각 무용수의 개별적인 존재에 공감이 가는 것은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초대권없이 예매한 티켓을 구입한 관객들로 꽉 찬 멋진 극장 로비에서 이 땅의 무용공연 현장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저녁이었다.

남정호(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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