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체 게바라 평전'

  • 입력 2000년 3월 17일 19시 09분


▼ '체 게바라 평전' 장코르미에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

'사랑 없이는 혁명도 없다’던 30여년전 그의 외침은 이제 젊은 세대를 겨냥한 광고문구 정도로 무장해제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와 인간애 같은 것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의 외침은 여전히 박제되지 않은 ‘복음’이다.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67년 볼리비아 산골에서 처형당한 사회주의자. 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저자는 15년간 체 게바라 가족 동료들의 증언과 그의 일기 메모 등을 모았다. 체 게바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유형화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의사이자 고고학자였으며 시인, 언론인이었고 혁명 후에는 쿠바국립은행의 총재도 지냈다. 뿐인가. 아마추어 사진사였고 베레모에 군복을 입고 골프를 치면서 시거를 즐겼다.

그러나 체 게바라를 혁명가로 만든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인술을 펴겠다는 꿈을 품었던 햇병아리 의사의 가슴에 ‘변혁’의 열망을 심은 것은 칠레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의 모습이었다. 미국인 광산소장이 하루 수백만달러의 수익을 거둬가던 광산의 거대한 노동자용 공동묘지. “얼마나 묻혔나요?” “대략 1만명” “미망인들과 자식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나요?” “…”

그러나 혁명가로서의 그는 고독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을 향해 “어떤 점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제국주의적 착취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성숙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많은 오류가 담겨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혁명의 성과를 즐기는 기득권층이 됐겠지만 그는 다시 군화를 신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총살당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네 자녀에게 남긴 편지는 이랬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너희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668쪽 1만20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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