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새 창작집 '딸기밭' 펴내

  • 입력 2000년 2월 25일 19시 34분


신경숙의 소설에서만 주인공이 죽거나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3년여만에 나온 그의 새 창작집 ‘딸기밭’(문학과지성사) 전체에 흐르는 애잔한 슬픔은 무엇 때문일까, 혹 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플래시백’ 기법(현재 상황이 나온 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술법) 때문일까?

수록된 중 단편 소설 모두에서 비극은 작품 서두에 이미 발생해 있고, 독자는 시종 화자의 시선을 따라 아픈 사연을 더듬어 가게 돼 있다.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난히 상처받기 쉽고, 타인과의 접촉을 낯설어하는 그의 주인공들이 슬픈 상황과 중첩되면서 유난히 가슴에 서늘한 기운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작가 신경숙이 약속 장소인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커피숍에 나타났다. 바람이 유난히 맵싸한 날이어서인지 볼이 발갛게 달아 올랐다.

-어떻게 지내세요?

“책을 마무리한 뒤라 모처럼 여유가 있어요. 아침마다 북한산 올라갔다 오는 것이 큰 즐거움이죠.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아 골짜기 풍경이 참 멋져요.”

문득 책 서두에 실린 단편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의 여주인공이 떠올랐다. 아이를 잃고 산에 오르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여인. 남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 할 일을 계속한다.

그러나 부부가 어느 날 밤 똑같이 죽은 자식의 방문을 환청으로 느낀 뒤, 강해 보이던 남편은 아내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린다.

-마음을 숨기는 인물들…. 중편 ‘딸기밭’의 여주인공도 남자와의 만남에서 채워질 수 없는 고독을 그에게 숨기고, 중편 ‘그가 모르는 장소’의 주인공도 상처받기 싫어 누구와도, 심지어 아내와도 마음을 터놓지 않는 인물로 드러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누구의 마음 속에나 다른 사람이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황량한 모래펄이 있어요. 그것을 보여주고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들끼리는 서로 볼 수 있지요. 사랑한다고 믿지 않다가, 교감이 올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겁니다.”

-이번 창작집에는 유난히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불행은 주인공들 사이의 교감을 불러오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만, 주인공이 지리산 야영 중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는 단편 ‘작별 인사’의 첫장면은 충격적이던데요.

“고요히 흘러가는 일상 가운데, 위협과 충격은 부지불식간에 쳐들어옵니다. 요즘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죽음은 삶의 이면이 아니라 삶과 공존하는 형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삶과 저승의 경계선 상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어떻게 삶 쪽에서 세상을 영위하나. 그것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런 위태로움이 서글프고, 그 서글픔이 신경숙 소설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비춰지는데….

“슬픈 것은 아름다움과 같은 선상에 있어요. 아름다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슬프고, 슬픔은 찬란한 소망을 낳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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