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미인'/남성들은 왜 예쁜여자를 좋아할까?

  • 입력 2000년 2월 25일 19시 33분


▼'미인(美人)' 프란세트 팍토 지음, 이민아 옮김 / 까치/ 288쪽 9000원▼

‘회양목더러 공모양 원뿔모양 정육면체모양으로 살라고 강요하는 정원사처럼, 남자는 여인의 이미지 안에다 자신의 근본적인 확신, 기하학적인 대수적 사고 습관을 강요한다.’

시종 진지한 이 책 속에서 이런 문장 하나를 골라내 일상의 잡담으로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남자들은 말이야, 여자들에게 8등신 미인이니 뭐니 하는 잣대를 들이댄다구.”

이 책은 이처럼 너무나도 익숙해 진부해보이기까지 한 논란, 즉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의 속성을 규정하는 행위는 무엇에 의해 좌우되는가’ 등을 고찰해 나간다. 특히 문제삼는 것은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식들’이다.

저자가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의 꺼풀을 벗기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정신분석이론. 남성이 그토록 여성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적 증후(Symptoms)의 파편들이라는 것이다.

그 증후의 심연에 놓여있는 것은 어머니와의 원초적 결합이다. 이 어머니는 남자아이들에게는 ‘나와 엄마는 성(性)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수 있기 이전의 어머니이며, ‘이상적 자아(Ideal Ego)’의 본질이다. 여기서 논의는 훌쩍 프로이트와 라캉에서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오른다.

이데아를 꿈꾸었던 플라톤이 본 아름다움은 물리적 실체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기는 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이로부터 남성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면 할수록 현실의 여성을 더욱 부정하는, 즉 ‘실존의 궤적을 제거하는’ 기묘한 배반이 시작된다. 피그말리온이 현실의 여자가 아니라, 석상을 조각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평생의 반려로 삼았다는 그리스 신화는 그 상징적인 사례.

그러나 결과는 그 완벽한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소외다. 완벽한 여성은 ‘이미지 안에 말없이 존재하는 그녀’일 뿐이다. 피와 살이 흐르고 남성과 분명히 성적 차이가 있는 구체적인 한 여자는 사상(捨象)되고 만다. 사르트르는 이런 역설에 대해 “대상은 곧바로 대상의 뒤로 숨어버린 듯 만져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다. 그렇기에 대상을 향해 일종의 슬픈 무관심을 품게 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남성이 바라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일치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계몽사상가 디드로가 일찍이 표현했듯이 ‘멍청한 얼굴, 천진하고 고지식하지만 표정이 없는 젊은 여자의 얼굴’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새겨넣을 수 있는 ‘아무 것도 찍힌 것 없는 표면’이다. 이런 의식은 여자는 ‘보여지는 존재’, 남자는 ‘보는 존재’라는 남성의 이분법적 의식구조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확인된다. 저자는 “남자가 겉치장을 포기한 것은 내가 누군가의 눈길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 내가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 데서 비롯됐다”고 해석한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론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남성중심의 미적 기준’ ‘여성상의 왜곡’이라는 페미니즘의 오랜 문제제기를 색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간다. 미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예쁜 성적 대상을 찾는 놀음이 아니라 ‘완전한 자기’ 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에서 비롯됐다는 설명. 이는 ‘예쁜 여자’를 둘러싼 남성과 여성의 오랜 갈등을 성적 대치구조의 세 싸움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맥락에서 달리 풀어나갈만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른들 안에 숨어 있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유아’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인지도 모른다.

저자 팍토는 언어학을 공부한 뒤 영국 켄트대에서 역사와 예술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 캠퍼스의 예술사 연구원이다. 이민아 옮김. 288쪽. 9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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