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주인공 이미지 해체-변형… 한국적 '팝아트' 관객 공감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은 아톰 같이 생겼는데 눈이나 코는 미키마우스를 닮았다. 등엔 슈퍼맨 망토를 걸치고 꽃이 가득 핀 텔레토비 동산을 걸어다닌다. 이름하여 ‘아토마우스(아톰+미키마우스)’.

21세기 아트를 ‘장르퓨전, 해체와 재구성’의 미학이라고 하듯, 만화 속 이미지를 해체하고 변형시킨 미술작품도 예술장르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적 ‘팝아티스트’를 추구하는 화가 이동기(31)와 박용식(29)이 그 주인공. 각각 홍익대 미대 회화과와 조소과를 졸업한 두 사람은 만화를 이용한 미술작업을 통해 관객과 호흡해 오고 있다.

이동기는 아기공룡둘리 아톰 미키마우스 슈퍼맨 텔레토비 등 친숙한 만화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변형하고 혼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또한 1910년대 신문만화(‘모던 걸’, ‘모던 보이’)에 컬러 색채를 입히거나, 김영하의 ‘최고봉’과 ‘보배’ 등 만화 장면을 크게 확대하고 색을 입혀 전시장에 걸어놓기도 한다.

“만화의 장면이 책에서 튀어나와 전시장에 걸릴 때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스토리 속에 구속돼 있던 만화의 한 컷이 독립된 미술작품으로 변형된 것을 보고 관객들은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거죠.”

설치미술가인 박용식은 ‘코스튬 플레이’(만화 주인공으로 분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직접 ‘마징가Z’의 의상을 입어 로봇 이미지와 인체의 결합을 시도한다.

또한 마징가Z의 ‘무쇠팔’을 대형 청동조각으로 만들거나, 콘크리트로 복제된 작은 마징가 주먹 1000개를 비닐봉지에 싸 놓기도 한다. 이는 늠름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무쇠팔’과 동네 구멍가게에서 팔던 ‘불량 장난감 주먹’을 대비해 상품화한 만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어릴 적에 본 만화 중에는 ‘마징가Z’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산 들 꽃 등 의 자연미보다 건물 자동차 컴퓨터 등 인공미 기계미에 친숙하고 ‘소비’와 ‘상품’에 길들여진 동세대와의 의사소통 도구로 만화를 선택했지요.”

만화 등 대중문화 이미지를 수용한 미술계의 ‘팝아트’는 1950년대 영국에서 태동해 196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융성했다. 앤디 워홀, 리처드 린드너, 래리 리버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조지 시걸 등 유명작가를 낳으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사조로 도 자리잡았다.

박용식은 “1970년대부터 본격 방영되기 시작한 TV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20∼30대 ‘만화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이제 우리도 만화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팝아트’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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