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공포 확산/문제점 원인점검]

  • 입력 2000년 1월 27일 19시 14분


《백신접종 사고가 최근 연달아 발생하면서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부모들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백신 사고는 몇백만분의 1 확률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이지만 백신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부족과 사고를 덮기에 급급한 보건 당국의 무책임한 자세가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양상이다. 백신이 무엇인지, 백신 관리엔 과연 문제가 없는지 긴급 진단한다.》

최근들어 잇달아 발생한 백신접종관련 사고는 그 원인이 백신접종에 의한 것인지 다른 원인때문인지 분명치 않지만 하나같이 접종 직후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해 부모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의사들은 부작용이 발생할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고도 원인조사를 해보면 백신사고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보고된 국내의 백신관련 사고는 95년이후 모두 22건으로 이 중 인과관계가 밝혀져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모두 10건에 불과하다.

종류별로는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혼합백신(DTaP) △BCG(결핵) △일본뇌염이었고 최근 영아를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사고는 국내에서는 처음 발생한 홍역 풍진 볼거리백신(MMR) 사고였다. 그러나 보건 전문가들은 공개되지 않거나 백신사고인지도 모른 채 지나치는 사고가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MMR백신의 경우 일본에서 94년부터 사용중단 조치가 내려졌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98년7월 “‘볼거리 바이러스’가 무균성수막염을 일으킬 빈도가 높다”며 MMR백신에 포함된 우라베 및 호시노 균주를 다른 균주로 대체할 것을 건의했던 사항이다. 보건당국은 “국내에서는 MMR백신이 무균성수막염을 일으킨 사례가 한건도 없고 균주 교체시에는 예산이 4배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이 건의를 묵살하고 교체를 미뤄왔다.

보건당국은 이번에 영아를 혼수상태에 빠뜨린 백신은 일본과는 달리 홍역균주에 포함된 에드몬드 및 슈바르츠 균주가 이상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드몬드 및 슈바르츠 균주는 지금까지 알려진 균주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데다 대체품도 없다. 백신에 포함된 이런 균주의 이름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최근 백신 사고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사고 발생후 문제의 백신에 대한 봉인 봉함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던 점. 식약청이 사고 백신과 같은 제조번호를 가진 백신에 대한 봉인 봉함조치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병원이나 보건소에서는 사고 백신이 버젓이 유통돼 부모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국립보건원 이종구(李鐘求) 방역과장은 “백신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이상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며 “백신접종시에는 아기에게 이상이 생길 경우 금방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접종기관에 30분 가량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몇백만분의 1이라는 확률 게임에 자녀의 목숨을 거는 것 같다”며 “보건 당국은 문제가 있는 백신을 빨리 교체하고 예방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보고체계를 갖춰 부모들의 불안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경실련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백신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며 의사는 백신접종시에 부모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정부도 백신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사고를 쉬쉬하지 말고 해당백신에 즉각적인 사용중지를 공개적으로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외국은 어떤가 ▼

백신접종에 따른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 백신제품에 쓰이는 균주는 100%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수입한 것으로 백신의 품질이 선진국 것과 차이가 전혀 없다.

통계를 보면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백신접종 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 보건부 산하 예방접종부작용보고체계(VARES)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간 1억건의 백신 접종 중 약 1만분의 1에 해당하는 1만여건의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VARES가 91년부터 96년까지 6년간 예방접종 부작용 6만5720건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 발열이나 일시적 보균에 따른 국소적인 반응 또는 미약한 불편감이지만 15% 가량은 사망 혼수 입원 장애 등 심각한 사고였다.

이처럼 미국에서 백신 접종에 의한 사고가 많은 것은 보고체계가 잘 이뤄져있어 조그만 부작용도 정부에 신고하는데다 사고에 따른 보상금도 높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신사고가 빈발하자 아예 백신사고에 따른 보상금 마련을 위해 백신 1회 접종분량(도스)마다 일정액의 특별세를 부과하고 있다. 도스당 특별세는 사고가 많은 DTaP는 4.56달러, MMR MR 또는 R백신은 4.44달러로 높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DT 또는 Td T는 0.06달러,소아마비는 0.29달러수준이다.

미의회는 86년 영아를 포함한 어린이들에게 사용되는 백신 부작용의 과학적 검토를 위한 특별학회를 소집했는데 이 학회는 수십차례의 전문가 패널을 통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예방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의 사례는 매우 드물며 백신으로 인한 어떤 심각한 상해나 사망도 예방접종의 이익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실제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질병통제센터(CDC)는 96년 실제 통계를 근거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질병 발생 비율과 예방접종후 질병발생 비율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디프테리아의 경우 예방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1건이었는데 비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질병 발생 확률은 20만건이 넘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 백신 원리와 부작용 ▼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상당수 부모들이 예방접종을 기피하거나 꺼림칙해하는 데 대해 보건전문가들은 “자녀에 대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을 경우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예방접종을 꺼리는 현상은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전염병의 무서움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지적한다.

백신이 무슨 원흉처럼 도마에 올라있지만 근대의학은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이나 질병을 백신을 통해 정복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백신이 인간의 건강에 기여한 공로는 이루말할 수 없다.

중세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한 페스트,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천연두와 홍역, 북미대륙의 인디안 전멸 등 인류 역사를 바꿔온 무서운 질병을 인간은 백신을 발견함으로써 극복해왔다.

1796년 영국인 의사 제너가 ‘어려서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에서 착안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콜레라 결핵 장티푸스 등을 차례로 정복해왔다.

인체는 한 번 들어온 균에 대해서는 항체를 만들어 내고 나중에 같은 균이 들어오면 골수속의 B세포가 ‘면역학적 기억’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다시 항체를 재생산한다. 백신은 이같은 면역의 원리를 이용, 균의 독성을 약하게 만들어 인위적으로 인체에 넣어주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일종이다.

백신은 균을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살균, 균이 증식을 하지 못하도록 한 ‘살균백신(비활성화 백신)’과 균의 독성을 아주 미약하게 만들어 인체의 면역체계만을 자극하도록 만든 ‘약독화 생백신’ 두가지로 나뉜다.

비활성화 백신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콜레라 백신 등으로 면역효과가 오래가지 않고 여러번 접종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생백신은 홍역 풍진 소아마비 백신 등이다.

그렇다면 왜 백신은 가끔 부작용을 일으키는 걸까.

백신은 주로 계란의 노른자 위에 배양하며 소량의 항생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계란 알레르기가 있거나 항생제에 민감한 사람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또 생백신의 경우 극히 드물지만 백신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독성을 회복, 오히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어떤 백신에 대해 이상반응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아직 현대의학은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고가 자꾸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병기기자> watchdog@donga.com

▼ 전문가 기고 ▼

과거 유럽에서는 잦은 예방접종 부작용 사례 때문에 한때 접종을 중단했다가 전염병이 다시 크게 유행해 예방접종을 재개했던 전례가 있다.

접종을 기피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의 합병증은 예방접종으로 유발될 수 있는 사망 및 후유증 발생 빈도인 100만∼200만회 접종 가운데 1회의 발생빈도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이번 백신사고를 계기로 백신의 제조과정 유용성 및 독성여부의 평가과정 유통과정, 보관 및 접종과정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을 해봐야겠지만 부모들은 영아나 어린이의 접종을 피해서는 안된다.

다만 부모들은 예방접종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대처방안을 잘 지켜야 한다.

첫째, 접종을 가능한 한 오전에 받도록 하고 주말접종을 피해야 한다. 부작용의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의사와 상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둘째, 접종을 받기 전 특이 체질이거나 알레르기가 있는지 여부를 전문의에게 진단받아야 한다.

셋째, 접종시 예방접종수첩을 반드시 지참하고 접종 후 3일까지 아이의 상태를 관찰해 기록해야 한다.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의 증세는 아이가 잘 놀지 않으면서 처지거나, 잘 먹지 않고 보채거나, 자꾸 잠을 자려고 하며 경기나 구토를 하는 것 등이다. 부모는 아이가 이같은 증상을 보이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경희대의대부속병원 소아과 차성호(車聖昊)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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