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윤형섭-강석현씨 당선소감

  • 입력 2000년 1월 5일 18시 32분


▼ 희곡가작 / 윤형섭 ▼

당선소감을 쓰는 것이 작품을 쓰는 것 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라며 겸손을 떨기에는 작품이 너무 엽기적이고 그렇다고 쎄게 나가자니 자꾸 잘난척을 하게 됩니다.

우선 기쁜 것은 준비하고 있는 공연제작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월말 쌈지돈들을 모아 어렵게 하는 공연이라 상금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칭찬을 받지 못해서 주눅이 들어있었는데 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걱정이 되는 일도 많습니다. 비아냥대는 눈들, 영업방해 운운하며 압박해 올 극작전공 친구들, 무엇보다 부모님이 보시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군요. 보여드리기가 참 민망한 작품이라...

2000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의 버거운 죄짐을 맡았던 세기말이란 단어도 끝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어디에 미루어 놓을까요? 이젠 편안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입니다만 나는 나에게 달려드는 따뜻함의 따귀를 갈겨야겠습니다. 스물 네 살, 젊음은 힘겹기 짝이 없지만 아직은 싸워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작품에 큰 영광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76년 서울 출생 ▽9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입학 ▽96년 상명대부속여고 연극반 ’산허구리’(함세덕 작) 연출, 대한민국 청소년연극제 작품상 ▽99년 ’구름’(아리스토파네스 작, 최성신 연출) 조연출

▼ 희곡가작 / 강석현 ▼

솔직히 전력을 기울여서 글을 쓰지 못했다.

······,

다시 어둠인가, 했는데 연락이 왔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새해 선물이다.그러나 마냥 기쁘지만 않은 것은 왜인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또 부족한 글을 가작으로 뽑아주신 이윤택심사위원님께 송구한 마음이다. 고향의 겨울 바다가 보고싶다.

삶이 힘들 때 문학에의 용기를 북돋워주신 서준섭 교수님,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박은희 선생님, 나의 지음(知音) 장덕순, ‘테오’처럼 나를 부양해준 동생 석훈, 많이 고생하시는 아버님에게 마음의 절을 드린다.

▽69년 강원도 고성 태생 ▽강원대 졸업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공후인’ 무대공연(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심사평 / 이윤택 ▼

단막희곡의 미학은 문체와 압축된 구성력에 있다.

자신만의 문체가 형성되지 않고 한편의 삶의 상징으로 제시되지 않는 소재주의적 발상으로 희곡은 쓰여지지 않는다.100편이 넘는 응모작 중에서 자신만의 문체와 자신만의 시각을 갖춘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극적 소재나 발상으로 희곡을 쓰려는 것이 문제고,극적 행위와 공간이 없는 일방적 말의 성찬은 사적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야 청산 가자’(강석현),‘저녁’(윤형섭) 2편을 놓고 고심했다.

우리의 아름답고 무서운 전래 설화가 한편의 희곡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야 청산 가자’는 무척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그러나 극적 구성력의 결함은 끝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남는다.너무 현실적 알레고리에 집착하지 말고 고쳐 써 보기를 권한다.

‘저녁’은 아비세대의 폭력성과 어미세대의 집착을 살해하면서 해방을 꿈꾸는 끔찍한 성년의식,절제된 문체,빼어난 공간 구성력 또한 갖추고 있어서 문학성과 연극성의 조화를 기대해 봄직 하다.

그러나 이런 작품에서 우려되는 것이 정서의 박탈감이다.잔혹을 위한 잔혹이 아니라,얼음 속에 묻혀있는 따뜻한 정서의 불씨를 되살려 낼 수 있는 극적 장치가 필요할 듯 하다.

고심 끝에 ‘아이야 청산 가자’‘저녁’ 2편을 가작으로 추천한다.2편 다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고,공연을 통해 수정 보완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사람 신인들의 상상력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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