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작가, 새 단편 '개구리' 창비에 발표

  • 입력 1999년 11월 15일 18시 56분


“고문은 철저히 인간을 파괴하는 ‘악마의 기교’입니다. 인간성이 말살된다는 점에서는 고문당하는 쪽이나 고문하는 쪽에 다름이 없어요.”

고문을 소재로 새 단편 ‘개구리’를 최근 완성한 작가 김영현(44·실천문학사 대표)의 말. 이번주 발간되는 계간 ‘창작과 비평’에 소개될 예정이다.

그는 “‘개구리’ 최종 손질을 끝내자 마자 이근안의 검거 소식을 듣게 됐다”며 우연치고는 신기하다고 말했다.

“파괴된 존재라는 점에서 이근안도 고문의 희생자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의 죄과를 심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 본인도 육체적 고통 체험 ▼

힘있는 톤으로 시작된 그의 말은 고문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낮고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작가 또한 고문 희생자 중 한사람. 강제징집돼 군복무 중이던 80년5월 영문도 모른 채 군 수사기관에 연행됐다. 보름 동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육체적 고통을 체험했다.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 후유증도 크죠. 한동안 폐소(閉所) 공포, 불안,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요즘도 악몽을 꾸고 소리지르며 일어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나 더 큰 후유증은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겁니다.”

그는 초기작 ‘벌레’ 이후 지난해 창작집 ‘내 마음의 망명정부’에 실린 단편 ‘새장속의 새’등을 통해 고문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압을 고발해 왔다. 새 단편에서 작가는 고문 희생자 이공(李公)의 입을 빌려 고문을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 고문부분 꼼꼼하게 묘사 ▼

‘아주 예술적이죠. 한 친구는 우리 몸의 뼈 관절을 순식간에 해체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팔 하나를 덜렁거리게 할 수도 있고요. …천천히 낮은 볼트의 전류를 가하죠. 그러다가 전압을 점점 올려요. 그러면 머릿속으로 번개와 안개 같은 것이 지나가죠.’(‘개구리’일부)

고문 부분의 꼼꼼한 묘사와 달리 작품 전체는 추상성과 상징성이 짙은 관념소설적 색채를 띠고 진행된다. 주인공인 이공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인물. 그는 ‘태초에 개구리가 있었다’라는 사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간호사에게 ‘나의 개구리가 되어 달라’고 주문한다.

작가는 “‘개구리’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중심이 사라진 시대를 나타내는 화두이며 이미지”라고 밝혔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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