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선영 새시집 '평범에 바치다' 펴내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시인 이선영(35)의 새 시집 ‘평범에 바치다’는 안/밖이 이루어 내는 사랑과 질투, 동화와 이화(異化)의 변주다. 그 안/밖의 변주는, 종종 육신/영혼의 대립쌍을 이루며 양쪽 편의 불화를 호소한다.

‘내 육신과 영혼은 다정하게 지내질 못한다/이를테면 이렇다/집 밖에는 왠지 행복하지 않는 나의 영혼이 있다/집 안에는 행복하길 간절히도 바라는 나의 육신이 있다/집 밖으로 보퉁이째 내몰린 내 영혼은 집 안에 있는 나의 육신을 목청껏 부르며 나오라 하지만 내 육신은 귀머거리다’ (내 육신과 영혼은)

왜 육신은 영혼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까. ‘이미 나는 육신의 뜻을 좆아 나를 푹! 묻었다’는 현실에, 또는 아이와 ‘거처’가 주는 안온한 욕망에 편입돼 있으므로. 그러므로 안/팎은 다시금 나/그, 또는 새어나가려는 나/나를 잠그는 그로 변주된다.

‘나는 열쇠에 잠긴다/문에 잠기고/내게 없는 그에게 잠긴다/나에겐 나를 꼼꼼히 잠가주는 그가 있다/틈틈이 나를 잠가주는 것이 나날의 일과가 돼버린 그가 있고/그가 잠가주지 않으면 새나갈 것 같은 내가 있다’ (나에겐 그가 있다)

안/밖의 변주는 잠김, 혹은 가둠을 지나 종내 받아들임/받아들이지 못함의 통찰로 들어선다. 시인은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자아가 환원된다는, 혹은 특징을 이룬다는 놀라운 관계의 아이러니에 맞닥뜨리게 된다.

‘모든 색은 자신이 거부하는 색깔을 띤다/(중략)/장미의 붉은 색은/장미가 토해놓은 붉은색/(중략)/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색깔인가? /이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가두어둘 수만은 없는 뜨거움, 거북함, 치밀어오름이란’ (빌 아저씨의 과학이야기)

자신을 가두어두도록 놓아두지 않는 바깥 혹은 타자란 화해할 수 밖에 없는, 또는 화해를 꿈꿀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결국 시인은 ‘그리운 것은 늘 바깥에 있다’ (63빌딩에 갇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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