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日작가 아사다 창작집 '철도원' 국내 출간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문학이 사회에 가지는 기능이란 무엇일까.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에 경종을 울리고, 인생에 대한 심오한 인식을 심어주는 일….

우리는 그렇게 기대한다. 그러나 잔잔한 목소리로 상처입은 영혼을 위로해주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일깨워 주는 것 또한 문학이 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역할이 아닐까.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淺田次郎·48)의 소설집 ‘철도원’(문학동네)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작가에게 117회 나오키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집.표제작은 오늘 폐막되는 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기를 모은 동명 영화의 원작.

97년 출간된 이래 일본에서 140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라,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그러나 아사다의 작법은 특별한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일본 단편소설의 ABC에 충실하다. 찬찬한 이미지와 배경묘사, 바둑을 두듯 세심하게 깔아나가는 복선, 심지어 ‘유령’또는 초현실에 대한 애착까지.

‘철도원’ 주인공은 홋카이도 외진 산골의 기차 종착역을 지켜온 오토마츠 역장. 외동딸의 죽음에도 까딱 않고 기차를 맞는 일에만 몰두한다. 눈 쌓인 어느 겨울, 그를 찾아와 애교를 떠는 어린 소녀는 누구일까.

‘러브 레터’에서 건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고로는 어느날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내’란 얼굴도 모르는 채 돈을 받고 호적에 올려주었던 중국인 불법취업 접대부. 고로는 뜻밖에 그녀가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한다.

아사다의 작품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치밀한 묘사.그는 집안이 몰락한 뒤 20대를 야쿠자 생활로 보냈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작가, 편집자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갖가지 특별한 계층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는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말이 그를 작가로 일으켜 세웠다. 91년 야쿠자체험을 소설 ‘찬란한 황금빛’에 담아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는 부족하다. 불행속에서도 사람들이 가진 선의(善意)를 믿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은 가만가만한 음성으로 독자의 가슴에 아릿한 화인(火印)을 남기고야 만다.

“눈물 많은 사람은 장소를 가려가며 읽는 게 좋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실린 ‘철도원’서평. 웬만큼 감상적인 텍스트에 면역이 돼 있는 기자는 충고를 일축했다. 그러나 ‘러브 레터’를 넘기다 섣부른 판단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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