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소설가 이문구

  • 입력 1999년 5월 28일 19시 21분


항간에서 하는 말에 애들은 열 두 번 변한다는 말이 있다. 철이 들 때까지 너그러운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는 곁말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매사에 늦되는 편이어서 아이 적에는 늘 그렇고 그렇다가 오히려 나잇살이나 먹어서 변하되 열 두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차례 변한 셈이다. 앞으로도 더 이상 변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변한다는 것은 내면적인 방황의 선택이다. 때문에 나는 철이 났는지, 덜 났는지 아직도 스스로 장담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난독시대를 나는 중학생 때에 보냈는데 그 무렵의 내 안목에 우리나라 작가에는 이광수만한 이가 없었고 나는 특히 ‘흙’을 제일로 쳤다. 그리고 빈농 맹한감의 어머니가 뚝배기 대신 호박잎에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이 ‘된장에 있던 구더기가 뜨거운 것을 피해서 잎사귀의 가장자리로 기어나오기 때문’이라는 데에 이르면 번번이 가슴이 떨리곤 했다.

나도 이광수가 ‘흙’을 쓴 나이가 되면 이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설레는 가슴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구러 이광수가 ‘흙’을 쓴 나이를 넘긴 지도 20년이 다 돼가건만 쓰기는커녕그비슷한 것도 시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서의 시건방은 늙어서의 주책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문단의 말석이 된 뒤에는 ‘논어’를 좋아했다. 역사에 대한 민중주의가 풍미함에 따라, ‘그렇다면 선비정신은?’ 하는 의문과 함께 역사를 이끈 수레바퀴는 외짝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내가 쓴 어떤 잡문에선가는 공자를 굳이 공부자(孔夫子)로 썼을 만큼이나 잔뜩 기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시들거리기 시작했다. 김일성부자가 가장 많이 재미를 본 이현령비현령식의 충효주의를 비롯하여 때아닌 구태의연과 악풍 폐습까지 미풍양속과 온고지신과 전통문화라는 미명으로 떠받드는 모양이나, 이제가 옛날같지 않은 세상인데도 의식의 저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유행(儒行)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해 부대껴가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지킬 것보다 버릴것이 더 많은 유산상속은 재산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에는 중국의 젊은 작가 여화의 장편소설 ‘허삼관(許三觀) 매혈기(買血記)’를 읽고 백만원군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무대가 중국이 아니거나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여운이 그리 오래갈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늙어가는 머리를 젊게하는 처방으로 가뭄에 단비같은 신선함이 있었다.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의식이 자유롭지 못하고, 의식이 자유롭지 못하면 상상력이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에게는 그것이 곧 중풍이 아니겠는가. 나는 늘 남의 책이 커보인다. 그래서 글을 쓴다.

이문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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