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 강단서 쏘아올린「문학사랑」…문학세태 비판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27분


“지금 스물몇살짜리가 쓴 문학에서 배울 거 하나도 없다. 오래 준비하지 못한 것들은 단숨에 끝난다. 뼈있게 성질을 가지고 코피를 쏟아가며 쓴 책만 읽어라.”

학생들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만큼 수줍음이 많지만 강의내용은 거침없고 신랄하다. 조세희(5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그가 이번 학기부터 경희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로 임용돼 매주 목요일 대학원생들에게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강의한다. 지난 25일 오후1시 경희대 본관 3층, 뒤쪽까지 청강생으로 붐빈 강의실을 찾았다.

“나는 하찮은 존재지만 한가지만은 긍지를 갖고 살아왔어요. ‘문학하는 이는 한사람 한사람이 단독정부의 수반이다’라는 것. 대체 여러분이 배우려는 문학사상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갖는 생각 하나하나가 문학사상이며 그게 모여 문학사가 되는 겁니다.”

‘무정부주의’‘환경소설’ 등 학생들의 주제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이뤄지는 수업. 그는 와중의 한두마디 단어를 화두삼아 ‘글쓰기의 출발점은 무엇인가’같은 근원적인 질문으로 학생들을 이끈다.

그가 문학에 관한 발언을 하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난쏘공’(78년)이후 작품집 ‘시간여행’(83년)과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85년)가 있을 뿐. 80년 광주문제를 다룬 장편 ‘하얀저고리’는 91년 계간지 연재 후 9년째 미완으로 남겨두고 있는 그다. 문장이 마땅치 않아서다. 80년대는 그렇게 치열하고 참혹했는데 그걸 전달하는 문장은 왜 이리 적확치 못한가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출판사 사장과 저명 문학평론가라는 사람이 작당해 작가에게 이거 한번 써봐라 주문하기도 한다. 시류따라 만들어지는 거, 그건 가짜문학이다.”

그에게는 강의노트가 없다. 피를 쏟듯 열변을 토할 뿐이다. 학생들에게도 “필기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문학을 하려거든 남의 말 줏어담기보다 ‘내뜻’을 세우라는 가르침이다.

그는 ‘난쏘공’의 밑바탕이 된 사건을 얘기했다. 당시 작가는 사기에 얹혀 집을 날렸다. 친척들이 사기꾼을 잡아 감옥에 넣었다. 합의를 위해 그가 사기꾼의 가족을 방문했을 때 집에는 병든 노부모와 어린 자식들이 끼니도 잇지 못한채 울고 있었다.

“사기꾼을 내 손으로 풀어주며 ‘네 부모와 자식을 울리지 마라’는 한가지만 다짐받았다. 여러분 문학은 사랑이다. 천가지 패러다임을 얘기해봐야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겸임교수 명칭을 쑥스럽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지만 지론은 분명하다. “여러분, 남의 말 인용만 하지말고 한줄이라도 자신의 문장을 써라. 못난 선배를 넘어서서 읽는 사람에게 생각거리를 주는 문장을 만들어라.”

그의 말들은 젊은 영혼들에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나간다.

“선생님은 이 시대에 쉽게 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 희소함 때문에 선생님이 일깨워주시는 가치는 더 소중합니다.”(박미선·경희대 국문과 박사4기)

31일 오후3시 경희대 중앙도서관 시청각실에서는 조세희씨의 공개강좌가 열린다. 02―961―0076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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