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 출판인회의 회장 『출판인프라 구축 나서라』

  • 입력 1999년 3월 24일 19시 03분


『영상 컴퓨터게임 등 문화산업을 육성해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열겠다』

문화관광부가 22일 자랑스레 발표한 올해 국정보고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지식인사회와 출판계의 우려는 크다. 우리 사회의 지적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전시행정용 사업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출판문화를 무시했다는 것.

김언호(한길사 대표)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만나 보았다.

―왜 반발하는가.

“지원액의 많고 적음이 핵심은 아니다. 영세한 출판업을 구해달라고 정부에 일방적으로 구걸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세계를 주도하기 위해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발상을 전환해 달라는 것이다.”

―발상틀을 바꾸자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다, 지식기반사회다 말은 많이 하는데 그런 사회에서는 정보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좋은 만화나 영화 디자인은 손재주가 아니라 사상이나 철학 문학등 문화 각 부문에 대한 다양한 정보에서 잉태된다. 지적 정보를 담는 그릇이 무엇인가.책이다.”

―‘책을 읽자’는 구호는 수십년째 반복돼 왔다. 실효를 못 거두지 않았는가.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국민이 지적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사회복지권 혹은 생존권과 같다. 이를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금처럼 공공도서관 운영비가 인건비 수리비 등으로 90%이상 사용되고 남는 돈으로 겨우 책을 사는 시스템으로는 안된다. 전국의 도서관이 좋은 책을 종별로 1천부만 소화해 준다면 출판은 살아난다.”

―출판진흥을 위한 장기책은 무엇인가.

“출판인력의 고급화, 유통체계 개선등이 중요하다. 좋은 책은 저자 못지 않게 편집자의 손에서 탄생한다. 유통체계의 낙후성은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지만 우선은 정찰제를 지켜야 한다.”

―책이 싸지면 독자 입장에서는 이익 아닌가.

“단기적인 생각이다. 일부 대기업이 양판점에 진출해 책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추고 있다. 소매서점이 경쟁 때문에 가격을 낮추다보면 결국 문을 닫게되고 만다. 서점이 죽으면 문화의 순환계가 정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문화 진흥을 위해 어느 정도의 예산 지원이 필요한가.

“앞에 이야기한 사업들을 추진하려면 최소한 연간 5백억원씩 10년은 지원해야 한다. 21세기 지적 인프라 구축에 이 정도를 들이는 것은 결코 많은 비용이 아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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