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입장★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한자어는 한글과 결합하여 말뭉치를 이루어 오랜 세월 사용되어 그 기능성이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고 지금도 우리는 고유의 조어법(造語法)에 따라 우리식 한자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곧 한자어는 ‘순수한’ 고유어나 마찬가지로 ‘우리말’인 것이다. 일본식 한자어가 일부 수입되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예가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우리 한자어 및 한자에 대한 교육이나 반성이 부족해서 말하자면 언어체계의 저항력이 감퇴되었기 때문에 있게 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자어와 한자를 돌보지 않은 사이에 ‘선택사양’이란 말이 버젓이 사용되고 ‘할애’란 말이 배정한다라든가 내준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또한 한자와 한글의 상생(相生)관계를 되돌아보지 않게 된 이즈음, 불행하게도 우리의 우수한 문자인 한글은 외국어 표기부호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간판과 상표를 보고 공공매체에 접하면, 표음성이 우수한 우리 한글이 종종 외국어의 부용물로 된 느낌이 든다.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고 현재의 언어생활에서 큰 구실을 하는 우리의 한자어는 언어대중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원래의 한자를 환기할 수 있을 때, 그 변별적 효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한자는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일상생활이나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만큼의 한자를 접하고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면 언어대중은 우리 언어체계에 용해되어 있는 한자어의 원뜻을 올바로 추상하여 우리말을 더 정확하게 구사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횡단보도를 행단보도로 표기하거나 여론을 여당의 견해로 오해하는 일은 막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어떤 분들은 한자병용이 일반인에게 부담을 주리라고 우려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간 학교교육과 대중교육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또 양적으로 확대되어 전체국민의 교양수준이 높아졌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한자의 인지와 변별도가 자연스레 크게 향상되리라 본다. 더구나 한자 병용이지, 국한문 혼용이 아니다. 필요한 범위에 한정하여 한자를 병용하는 것은 오히려 언어문자생활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심경호<고려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