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질줄 모르는 괴담特需…소설계에도 유령바람 『솔솔』

  • 입력 1998년 9월 2일 19시 39분


올해는 ‘귀신이야기 특수(特需)’가 여름 한 철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여고괴담’으로 시작해 ‘퇴마록’으로 관객몰이를 계속하는 극장가나 ‘전설의 고향’, 미스터리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끄는 TV 얘기만이 아니다. 한국문학에서도 ‘귀신’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가을호에 실린 신경숙의 소설 ‘작별인사’와 박정요의 ‘일곱 겹의 침묵’.

‘작별인사’는 올 여름 지리산에 쏟아진 폭우로 목숨을 잃은 한 여인의 혼이 친구들에게로 날아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이야기.

‘일곱겹의 침묵’에서는 사람의 혼을 보는 능력을 지닌 여인이 아버지의 학대로 몸에서 혼이 떠난 언니, 80년 광주에서 계엄군에게 끌려가 죽은 뒤 혼만 휘적휘적 집으로 찾아왔던 시동생등 자신이 목격했던 찢긴 혼들의 모습을 넋두리한다.

두 작품 외에도 이제하의 97년작 ‘뻐꾹아씨 뻐꾹귀신’ 등 최근 두드러지는 유령이야기는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어렵던 예.

그러나 구미에서는 ‘오트란토 성(城)’을 쓴 호레이스 월폴부터 20세기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까지 괴기 혹은 팬터지로 분류되는 소설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왔다.

왜 한국 작가들은 이 시점에 소설속에 유령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평론가들은 ‘현실의 빈곤’ ‘리얼리티의 개념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평론가 방민호는 “오감(五感)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리얼리티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것만이 현실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평론가 황종연(동국대 교수)은 “90년대 일상이 지리멸렬해지면서 한국 작가들이 80년 광주의 참상이나 실연 가족의 죽음같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의 서술조차 현실의 인물이 아닌 영혼을 화자로 내세우는 것을 하나의 미학적 장치로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령’들의 앞으로의 행보. 상상력의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현실을 도피하는 방편이 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종연은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의미있는 이유는 그 환상들이 얼룩진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재인식하게 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문학에 출현하는 ‘유령’도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못한다면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해 만들어진 헛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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