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쓰는 편지]맞춤법 서바이벌 게임

  • 입력 1998년 2월 2일 19시 38분


‘김치찌게( )/김치찌개( )’,‘떡볶이( )/떡뽁기( )’.

칠판에 써 놓은 문제를 보고 교실의 네귀퉁이로 아이들이 몰려간다. 맞춤법을 배우는 시간, 오늘의 상품은 초코파이 4개. 살아남기 경기, 일명 서바이벌 게임. 정답이 발표되자 탄성과 아쉬움의 함성으로 교실이 떠나갈 듯하다. 다시 한번 경기의 규칙을 상기시킨다. 절대침묵, 옆반의 수업에 방해되지 않기.

다시 칠판 가득 문제를 적어 나간다. ‘수양/숫양’, ‘수소/숫소’….

최후로 살아남은(?)학생은 학과성적의 순서와 상관이 없다. 아이들의 표현으로는 ‘찍기의 명수들’이다. 간혹 흐린 기억으로 한번 냈던 문제를 또 내려고 하면 아이들의 항의가 튀어나온다. ‘선생님 그거 지난 시간에 냈던 건데요.’

신통하게도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 것은 잘 기억한다. 학기초에 했던 것을 학년말에 다시한번 시도해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삭월세’가 아니고 ‘사글세’임을 알고 ‘아지랑이, 대장장이, 개구쟁이’는 정확히 구분할 줄 안다.

학년말에 교지가 나왔다. 교정을 보느라고 보았지만 틀린 곳이 많았다. 한 글자에 대해 선착순 1명씩 볼펜을 주기로 하고 틀린 글자 찾기를 했다. 밀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점심도 먹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읽을 줄이야. 놀라운 것은 기가 막히게 틀린 글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노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놀이를 통해 규칙과 질서를 익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김진호(서울전농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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