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아우슈비츠」]삶속에 투영된「神의 그림자」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아우슈비츠」(최창학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신(神)의 존재에 대한 의문처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해온 화두가 있을까. 신을 믿든 믿지않든 인간의 무의식 저편 어디쯤 절대자에 대한 외경이 버티고 있음을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인간은 죽음과 같은 절대적 한계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가 최창학씨(56·서울예전교수)가 기나긴 공백을 깨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룬 장편소설 「아우슈비츠」(문학동네 펴냄)를 펴냈다. 2차대전 당시 유태인 포로수용소는 80년 광주학살과 함께 인간이 신을 찾게 되는 비극적 계기로 설정돼 있다. 『종교를 소재로 한 글들이 흔히 그러하듯 단순한 전도용 소설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단정적인 긍정을 피하게 된 이유죠』 줄거리는 독실한 기독교도인 신학교수가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경찰발표에서 시작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뛰어든다. 이들은 살해된 인물이 광주학살을 주도한 군인이며 과거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온갖 성적(性的) 비행까지 저질렀음을 밝혀낸다. 또 교수의 아내가 자신을 성폭행한 시아버지를 살해했으며 교수가 범행을 스스로 뒤집어 쓴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살인사건과 함께 소설가 등 주변 인물들이 겪은 과거및 현재의 상처를 상세히 그리고 있다.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절망, 그리고 한계상황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들의 개인사에는 언제나 신의 그림자가 투영돼 있음을 엿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저자는 인간과 신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종교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생존 사랑 죽음 등 구체적이고 근원적 문제에 눈길을 돌린다. 68년 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파격적 형식의 중편소설 「창」으로 등단, 70년대 실존주의적 성향의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 장편소설은 80년이후 처음으로 손을 댔다. 『소설가에게 침묵의 기간은 또 다른 창작이라고 합니다. 이번 소설은 저의 삶을 「살아 있는」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했던 절망감,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려 했던 몸부림의 소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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