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36년]『식민지 정책의 본질은 「착취성」』

  • 입력 1997년 12월 6일 08시 21분


《일제 식민통치는 우리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수탈이었는가(「식민지 수탈론」), 아니면 자본주의 근대화 발전에 기여한 것이었는가(「식민지 근대화론」). 일제의 식민지배는 총체적인 국가 잠재력에 대한 착취요 수탈이었기 때문에, 미시적인 일제의 일부 자료만을 근거삼아 이땅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시각이 그릇됐다는 논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반론과 함께 올들어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그 주무대는 계간 「창작과비평」.》 창작과 비평은 97년 여름호에 수탈론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고 가을호엔 그에 대한 반박논문, 즉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논쟁이 가열되자 수탈론과 근대화론 각 진영의 수장격인 신용하 안병직 서울대교수가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재확인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역사비평」 등으로도 확대되어 지식인 사회의 담론거리가 되고 있다. 논쟁의 파문은 지난 여름 일본언론에까지 확산됐다. 보수우익지 산케이신문이 광복절을 앞둔 8월14일 「한국내 일본식민통치 근대화 기여 주장 대두…민족주의자 위기감」이라는 기사를 1면톱으로 게재, 마치 한국에서 식민지미화론이 일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논쟁의 도화선은 조석곤 상지대교수(경제학)의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넘어서」(창작과비평 97년 여름호)와 올초 조교수 등이 공동저술한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민음사). 조교수는 창작과비평 논문에서 토지조사사업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실증적 논의」를 펼치며 『토지조사사업이 조선의 토지를 수탈했다고 보는 수탈론은 우리가 청산해야 할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토지조사사업은 토지를 수탈하지 않은 근대적 개혁으로, 농촌주민과 일반인들이 그 엄정한 공정성 사업성과 등에 만족스러워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 수탈론과 근대화론 모두를 극복하겠다는 것이 조교수의 의도였지만 수탈론 비판에만 그쳤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고려대강사 정태헌씨(한국사)는 가을호에 「수탈론의 속류화 속에 사라진 식민지」를 발표, 『조교수의 주장은 경제 논리에만 매몰돼 식민지상황이라는 역사성을 몰각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조교수는 통계적인 성장지표에만 주목할 뿐 그 의도를 둘러싼 역사적 해석은 도외시하고 있다』며 『총독부를 근대 통치기구 정도로만 이해함으로써 식민지 수탈기구라는 역사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 논쟁의 핵심은 식민지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근대화와 자본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식민지와 근대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한 견해 차이다. 그동안 우리 학계의 주류는 「수탈론」이었다. 이 수탈론은 넓게 보면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등과 맞닿아 있다. 구한말 개항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상당 정도 자라나 있었고 그렇기에 일제의 식민수탈이 없었더라면 순조로운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을 것이란 논리다. 이에 반해 근대화론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즉 자본주의 성장의 뿌리를 일제시대에서 찾는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산계획 공업화정책 등이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단초라고 보고 각종 경제지표에서 잘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주로 사학계는 수탈론쪽에, 경제사학계는 근대화론쪽에 발을 딛고 있는 양상이다. 수탈론 및 내재적 발전론자들은 근대화론이 일제시대 경제상의 지표, 통계숫자에 갇혀 역사성을 무시함으로써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신용하교수는 『식민지시대 경제연구는 한국이 독립했을 때의 발전과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의 발전을 비교해야만 가능하다』고 보고 경제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근대화론이야말로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한다. 식민지정책의 본질은 수탈이라는 것이 신교수의 결론. 지명관 한림대교수도 『지표상으로 보면 식민지시대에 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숫자는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식민지라는 역사 전체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근대화론자들은 식민지시대를 수탈로만 보는 것은 민족감정의 과잉으로, 역사의 실상을 왜곡하는 비과학적 연구방법이라고 비판한다. 식민지라는 상황이 수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측면도 있고 따라서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시각이다. 안병직교수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포섭된 이후 농업은 피폐되고 민족자본은 몰락해 갔다는 견해는 최근의 실증 연구 결과로 볼 때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식민지시대 우리의 고통을 피지배국민으로서의 고통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최초의 자본주의적 경험, 즉 자본주의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엔 근대를 새롭게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수탈론 근대화론을 극복하고 제3의 대안이론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자본주의의 근대, 근대성에 집착하다보니 근대 자체를 「최고 선(善)」의 가치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결코 역사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대의 틀로만 역사를 보려는 시각은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중심적 민족주의(수탈론)도 경계해야 하고 다층적인 사회적 역사적 요소를 무시한 채 경제논리와 같은 하나의 기준으로만 접근하려는 시각(근대화론) 역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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