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아르마다」등 1587년 동서양역사 조명

  • 입력 1997년 11월 20일 09시 04분


1587년 영국해군과 스페인 무적함대간의 전쟁(아르마다전쟁)이 스페인의 승리로 끝났다면, 또 중국 명나라의 개혁가 장쥐정(張居正)이 좀더 오래 살았다면 동서양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서술에서 「만약」이라는 단서는 부질없을 뿐 아니라 자칫 비과학적일 수 있다. 과거를 바꿀 수 없음은 접어두더라도 셀 수 없는 변수로 구성된 역사가 단지 몇몇 요소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각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은 그것이 과연 필연적인 것이었나,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기준으로서 의미를 가질 따름이다. 가지않은 길이 펴낸 「아르마다」(개럿 매팅리 지음)와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레이 황 지음)는 각각 유럽과 중국의 운명이 뒤바뀔뻔 했던 같은 시기를 놓고 현대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아르마다」는 영국의 왕위계승자였던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이 있었던 1587년 그리고 영국과 스페인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그 이듬해까지를 문학적으로 묘사한다. 아르마다전쟁은 당시 열세에 있던 신교도 세력을 대표하는 영국과 구교도의 맹주국인 스페인간의 일전. 「전유럽이 숨죽여 지켜본」 이 전쟁의 결과는 기독교 세계 전체의 운명과 결부된다. 단순히 스페인과 영국간의 해군전이 아니라 근대 유럽에서 처음 있었던 국제적 위기이자 영토와 민족을 기준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형태가 드러나는 계기였다. 후대의 사가들은 이 전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을 방불케하는 최초의 「이념대결」이었음에 주목한다.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는 관료제의 병폐로 쇠락해가는 중국 명나라의 정치현실을 정밀하게 다루고 있다. 여진족장 누르하치가 부족을 통합하며 서서히 목줄기를 죄어오던 위기상황에서도 명나라 조정은 관료제의 병폐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다. 어전회의가 소집됐다는 뜬소문에 형식만을 지상명제로 떠받드는 수백명의 문무백관이 일제히 황성을 향해 내닫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강력한 군대도 재정능력도 없이 모든 사람이 그가 천자라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면 천자의 지위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황제는 무력하기만 했다. 이런 황제를 중심으로 대학사 장군 철학자 등 개혁세력의 핵심 6인은 사회변혁을 도모하지만 관료제의 근본적 모순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제도에 부닥치다 불나방처럼 사라져간다. 1587년, 중국에는 결국 아무일도 없었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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