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74년 발자취]한국문단 「巨木」 등용문

  • 입력 1997년 10월 31일 19시 40분


74년 전통의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한국현대문학사의 맥을 잇는 문인들을 탄생시켜왔다. 소설 한 분야만 보더라도 일제 암흑기인 36년에는 김동리, 61년에는 4.19 세대 문학인인 홍성원, 72년에는 유신폭압통치에 저항하는 풀잎같은 서정의 작가 한수산, 그리고 격동의 80년대를 앞두고는 장차 붓 한자루로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펼칠 작가 이문열(79년)을 발굴해냈다. 시의 시대였던 80년대에는 미완의 대기들이 잇따라 동아일보로 등단해 찬란한 감성을 열어보였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등에서 세기말의 절망적 허무를 그려낸 시인 겸 평론가 남진우(81년), 「연어」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등으로 김소월의 전통적 서정을 잇는 안도현(84년), 단 한권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으로 한국시단에 돌풍을 일으킨 요절시인 기형도(85년), 수많은 주부에게 문학의 열정을 지핀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의 늦깎이 주부시인 박나연(90년)…. 문학청년들의 꿈의 관문인만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도전자들이 세운 진기록이 적지않다. 36년은 유난히 「대어(大魚)」가 많이 쏟아져 나왔던 해. 36년 소설부문에는 김동리와 정비석, 시에는 서정주, 시조에는 이호우씨가 각각 당선됐다. 이미 33년부터 서로의 문학적 열정을 이해하는 친구였던 김동리와 서정주는 이 동반당선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김동리는 자신의 자서전에도 이 일화를 소개했다. 소설가로만 알려진 황순원씨도 문인으로서의 출발은 3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시작했다. 이미 중견시인 대접을 받던 김승희씨가 94년 느닷없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부문에 당선해 소설가로서 제2의 창작인생을 시작한 것도 화제였다. 「문학의 위기」라는 90년대에도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위기를 타개할 구원병들을 탄생시켰다. 95년 중편소설 공동당선자인 은희경 전경린씨는 당선직후부터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걸기」 「염소를 모는 여자」 등의 화제작을 내놓아 동서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문학만의 잔치가 아니라 문화판 공동의 잔치였다. 변화하는 문화지형에 걸맞게 부문을 신설해온 동아일보사는 98년부터는 종합일간지 신춘문예사상 최초로 영화평론부문을 신설했다. 일제 암흑기에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위해 신춘문예에 동화부문을 개설, 동화작가 윤석중을 탄생시켰다. 65년부터는 시나리오부문을 신설해 「동의보감」의 저자 이은성씨(작고)를 발굴해냈다. 문화적 욕구가 다양해진 80년에는 미술평론과 음악평론을 각각 신설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씨(81년)와 동양화가 김병종씨(80년)도 동아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다. 영화평론부문의 신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부문은 12개로 늘어났으며 이는 국내 최다이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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