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아리랑」등 日관련 책 『봇물』

  • 입력 1997년 8월 19일 07시 52분


군위안부 대량학살 생체실험…. 아시아와 태평양을 무대로 자행됐던 거대한 반인류 범죄가 1945년 막을 내렸다. 마땅히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단죄되었어야 할 전쟁범죄. 그러나 일본에선 참회 대신 변명이 이어진다. 「피할 수 없었던 자위(自衛)전쟁」이었다는 강변. 일본의 전쟁범죄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어떤 나무로 자라났고, 오늘날 어떤 열매 속에 독(毒)으로 남아 있는가. 8월을 맞아 출간된 5종의 책이 전말을 보고한다. 교도통신사 사회부가 지은 「일본은 살아있다」(프리미엄북스). 한 인간이 밟아온 삶의 궤적에 확대경을 들이대자 현대사가 또렷이 들여다보인다. 주인공은 실제인물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전쟁중 육군 작전과에서 일군의 전략을 총지휘했으며 뒷날 대한(對韓)배상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저자에 대한 국수주의자라는 평판이야 어쨌든 간에 「오늘날의 일본은 패전 이전의 일본을 직접 계승하고 있다」는 구절에서 오늘의 일본을 읽게 된다. 「일본은…」이 역사의 칼자루를 휘두른 인물을 담았다면 「종군위안부」 「사할린 아리랑」(눈빛)에는 역사의 칼춤 앞에 숨죽여야 했던 민초들의 피맺힌 한이 담겨있다. 『군인들은 잠자리를 거부하는 두 여자의 목을 잘라 끓는 물에 넣었다. 그 물을 떠서 마시도록 강요했다』 생생한 고발은 「눈을 똑바로 뜨라」며 우리를 다그친다. 이런 위안부의 아픔이 한시대에 멈추지 않음을 노라 옥자 켈러의 장편소설 「종군위안부」(밀알)가 고발한다. 14세의 나이로 위안부에서 탈출한 엄마 아키코와 그녀의 정신분열로 고통받는 딸 베카. 엄마는 자기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일본군의 폭력과 함께 죽었다고 믿는다. 자신이 이름을 물려받았던, 위안소에서 몸을 지켜 살해당한 한 위안부 여인(아키코)의 당당한 혼백이 대신 자기속에 살아있다는 믿음이 그를 간신히 지탱한다. 하리마오 박(본명 박승억·78)의 「누가 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말하는가」(전2권·송림출판) 역시 장편소설 형식에 현대사의 굴곡을 담아냈다. 독립운동자금을 대던 부모의 체포, 일본인 판사 부부의 적자로 입양, 일본 육군 소위로 임관…. 유난히도 굴곡이 많았던 저자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반제국주의 비밀조직의 편지를 실마리로 추리소설처럼 의문을 풀어나간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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