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고대신문」 첫 여성편집국장 최미랑

  • 입력 1997년 7월 15일 08시 14분


호랑이와 막걸리. 우악스런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기로 소문난 고려대학교. 이런 고려대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고대신문」의 사령탑인 편집국장석을 가냘픈 한 여학생이 점령했다. 창간 50년만에 처음. 최미랑. 올해 스무살의 국문학과 3학년생이다. 『여자가 처음 편집국장이 된 것을 커다란 사건처럼 바라보는 시선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요』 신문사내 편집실 한쪽, 책상과 컴퓨터 옆으로 소파까지 갖춘 「우아한」 국장실에서 마주앉은 그녀는 편견의 타파를 먼저 강조했다. 『한때 「고려대 여학생과는 미팅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죠. 지난해 「고려대의 성(性)」을 주제로 1면 머릿기사를 쓴 기억도 있어요』 대학내에서 여학생 중심의 몇몇 단체들이 어렵게 외치던 여성운동의 모양새는 이제 바뀌었다는 게 그녀의 주장. 『지난해부터는 봄가을 축제때 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들을 거리낌없이 털어놓거나 자유롭게 논의하는 행사도 펼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가녀린 여학생에게 기자일은 힘들지 않을까?」 『물론 빡빡한 제작일정 탓에 일상생활 전부를 바쳐야 할 정도인데다 학과공부도 해야하니까 쉽지는 않지요』 제작일정은 월요일 오후의 편집회의에서 지난주 신문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운 기획을 의논하면서 출발. 밤 10시경에서야 끝내고 식사와 뒤풀이를 한다. 그리고 2∼3일간 취재와 기사작성을 하다보면 금요일 오후, 마감독촉에 쫓기게 된다. 그러나 마감이 끝은 아니다. 조판작업을 함께 하면서 밤샘을 하기도 한다. 한번은 특집기획을 하면서 사흘밤을 내리 샌 적도 있었다며 웃는다. 『참, 수습기자 시절 사진기자를 겸하면서 시위현장은 물론 사회곳곳을 돌아다녔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런 경험이 기자로 뛰는데 또 학교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됐음을 강조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여하튼 지금은 1학년때 함께 신문사에 입사한 동기 12명(여학생 4명) 가운데 9명이 그만두고 3명이 남은 상황.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음을 짐작케 한다. 그녀는 사표같은 것은 꿈도 안꾸고 이를 악물고 야무지게 일했다. 그녀의 성실함은 옆에서 지켜보는 선후배들의 신뢰감에서 엿볼수 있다. 이학수취재2부장(영문과2년)은 『거의 매주마다 편집회의가 끝난 뒤 밤늦도록 뒤풀이를 하는데 한번도 술자리에서 먼저 「뻗는 것」을 못봤어요. 특히 일에 관한 한 여간 철저하고 꼼꼼하지 않죠』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 지금은 봄학기에 새로 입사한 수습기자들의 훈련과 방학호(8월1일자) 및 개강호(9월1일자) 기획과 취재준비로 방학중의 조용한 교정에서 신문사편집실을 가장 분주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별다른 각오가 있지 않을까. 『매주 꼬박꼬박 성실하게 지면을 제작하는게 가장 중요하죠. 또 창간50주년 기념사업과 지면혁신에 주력할 작정입니다』 목포여고시절 문예반에서 시와 소설을 읽고 쓰는데 열중하던 그에게 기자를 하면 잘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충고가 지금 자신의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사회문제화된 청소년 폭력을 거론하면서 『일부 불량학생외에도 대다수 학생들이 너무 개인화되면서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울러 그는 『고민할 시간에 뭔가 다른 것을 해보라』는 조언과 함께 『서예를 즐기는 아버지께서 써보여준 「참을 인(인)」자를 늘 가슴에 담고 지낸다』고 덧붙였다. 〈김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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