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기자들 목격담 「5·18 특파원리포트」출간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그해 5월,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대한민국 광주. 80년 5월17일부터 21일까지 닷새동안 통신이 끊긴 고립무원의 「섬」. 주검과 함성 분노 그리고 봄 햇살이 가득했던 거기에 취재하러 갔던 그들. 그들, AP통신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 등 외국기자 7명을 포함한 「17명의 기자들이 17년만에」 빛바랜 취재수첩을 꺼냈다. 그 도륙의 아수라 며칠간의 목격담. 「5.18 특파원리포트」(풀빛). 그 오랜 세월의 침묵에도 그날의 기록과 증언은 아직 흥건히 젖어 있다. 숨이 막힌다. 금남로에 흘러 넘치던 아리랑 가락이 끓어질듯 다시 이어지며 피비린내가 끼친다. 명찰과 군부대 마크가 흰 테이프로 가려진 계엄군의 유령같은 모습. 금남로에서 오와 열을 갖춰 일사불란하게 실시되던 총검술 훈련. 군가를 부르며 시위대를 향해 행진하는 군인들. 마침내 대오가 일제히 풀리면서 사방에 깔린 「사냥감」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뉴욕타임스의 헨리 스톡스특파원은 「광주가 내 인생을 바꾸어버렸다」고 적는다. 너무 처참한 현장을 지켜보며 기사 쓰는 일에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고 한다. AP통신의 테리 앤더슨특파원은 총격을 뚫고 다니던 취재경험을 털어놓으며 『기자 생활중 가장 어렵고 인내심을 요하는 현장이 광주였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당시를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라고 증언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일본 총국장이었던 샘 제임스특파원은 『「광주」라는 단어가 지난 17년동안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허무를 불러일으켜 왔다』고 말한다. 미국 볼티모어 선의 블레들리 마틴기자는 『소련의 아프간침공, 인도의 폭동, 중국의 江靑(강청)재판 같은 현장을 취재했지만 광주야말로 기억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편집진은 당시 「5월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라도 호남 광주 연고가 있는 이는 모두 제외했다. 「광주 바깥 사람들의 진술 증언」을 통해 당시를 재조명한다는 의도다. 그래서 「남」처럼 외계인처럼 바라볼 수 있는 17명의 기억은 더욱 날카롭고 리얼해 보인다.5월21일 집단발포 상황을 적은 당시 동아일보 기자의 기록. 오후5시 도청앞 광장에 울려퍼지는 애국가는 발포명령을 알리는 신호였다. 애국가의 엄숙함에 엉거주춤 일어섰던 한사람이 갑자기 등에 피를 뿜으며 거꾸러졌다. 이어지는 총성. 도청앞 광장에 정렬해 있던 군인들이 맨 앞열은 「무릎 쏴」, 다음열은 「서서 쏴」 자세로 일제 사격에 나섰다. 이들이 총격을 마치고 후미로 빠지면 다시 다음열이 기계적인 자세로 일제사격을 반복했다. 해병대 출신의 그 기자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총알이 총성보다 빠르다는 것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금남로 거리에 휘황하게 내걸린 「부처님 오신날」 봉축아치가 눈을 시게 하던 그해 봄날에….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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