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농촌공동체「푸른누리」,남남 모여 너나없이 산다

  • 입력 1997년 5월 10일 08시 27분


전혀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 한 지붕밑에서 한가족을 이루고 산다. 집도 옷도 신발도 돈도 모두 공동소유. 자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사에 남녀 구분도 없다. 남자가 밥 짓고 빨래도 하고 여자가 농사일을 하고 집을 짓기도 한다. 설거지도 우르르 달려들어 뚝딱 해치운다. 무소유 농촌공동체 「푸른 누리」 사람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속리산 언저리. 식구는 모두 13명. 두 가족 7명에 스물 여덟에서 서른다섯까지의 젊은 미혼 남녀 6명이 한 식구다. 아이 셋에 어른 10명. 고향도 서울 부산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제각각. 인생경력도 천차 만별이다. 푸른누리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맏형은 있다. 최한실씨(49)가 바로 그 사람. 95년 11월 경기 안성에서 전재산 2천만원으로 혼자 푸른누리를 시작했다. 상주로 옮긴 것은 올 1월. 최씨는 『우리의 꿈은 소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하루 하루가 투쟁적인 도회지의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푸른누리는 먹고 사는 게 꼭 절집의 스님들 같다. 반찬은 김치에 두세가지 나물무침이 고작. 그것도 대부분 손수 가꾼 것들이다. 농약을 치거나 비닐하우스 재배는 꿈도 안꾼다. 밥 먹기전엔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고 기도를 한다. 그렇다고 종교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푸른누리 식구들은 저녁식사가 끝나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참밝힘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의 일을 돌아보고 좋았던 일, 언짢았던 일 등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이견이 있을 땐 전원의 뜻이 모아 질 때까지 계속 의견을 나눈다. 요즘 식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푸른누리의 총재산이나 다름없는 2천여평의 밭을 일구랴, 새 보금자리를 지을 터 닦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침 6시 온식구가 앞마당에 모여 한바탕 맨손체조를 하고 어른들은 일터로 향한다. 10시에 아침식사. 그동안 초등학교 4학년인 최솔과 2학년인 최바다는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잠자리 이불개기, 방청소, 옷 챙겨 입기 등 모든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 이것은 갓 백일을 넘긴 박정인이를 제외하곤 누구나 마찬가지. 푸른누리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모두 열려 있다. 안팎에서 투시되는 성긴 발만 쳐져 있는 푸른누리의 화장실처럼.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늘 문이 열려 있다(0582―536―9820). 다만 일정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문은 안본다. TV는 꼬마들 전용. 어른들은 본척도 않는다. 그것마저 아이들이 점점 바깥놀이에 재미를 붙여감에 따라 곧 치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 잘하는 정치가보다 내 땅 일궈 사는 농부가 되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푸른누리 식구들의 당당한 「귀거래사」다. 〈상주〓김화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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