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키드북 포럼]옛이야기 보따리(보리·7권)

  • 입력 1997년 4월 19일 08시 37분


『옛날 옛날 갓날 갓적 하늘 땅이 열릴 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까막까치 말할 적에, 강아지에 뿔 날 적에, 수탉에 귀 돋칠 적에, 헌 누더기 춤출 적에, 물도 불도 없을 적에…』 할아버지의 곰방대에서 뻐끔뻐끔 뿜어 나오는 담배연기처럼, 아랫목에서부터 스멀스멀 차오르는 군불의 온기처럼, 오물오물 씹고 난뒤에도 오래 남는 누룽지 맛처럼 구수한 이야기꽃이 피어오른다. 명절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쌈짓돈을 꺼내듯 이야기 보따리에서 「두꺼비 신랑」 「메주 도사」 「호랑이 잡는 기왓장」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어린이들의 귀가 절로 쫑긋해진다. 전래동화를 모아 감칠 맛 나는 우리 입말(구어체)을 그대로 풀어 쓴 「옛이야기 보따리」(보리). 「읽는 글」이 아니라 「듣는 말」로 담아 꿈꾸듯 스며들듯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살 없는 활로 발 없이 달리는 노루 한놈을 쏘아 사람없는 장에 내다 팔아 가지고 돌아오는데 물 없는 강에 무엇이 둥둥 떠내려가기에 가만히 보니까 거짓말이 소복소복 떠내려가고 있더란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우리 옛이야기 들려주기와 되살리기를 위해 애써온 동화작가 서정오씨. 그가 평생 발로 뛰며 찾아낸 귀한 우리 옛이야기가 매권 10편씩 실렸다. 장난스럽고 짓궂기만 한 민화풍의 삽화가 절로 웃음을 물게 한다. 연말까지 모두 10권이 나올 예정. 각권 5,800원. 이향숙(어린이도서연구회) 박문희(아람유치원장) 김서정씨(프뢰벨유아교육연구소)가 내용을 살폈다. 김서정씨는 『전래동화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라며 『종전의 전래동화 모음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발굴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터의 이야기꾼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을 홀리듯 풀어내는 입담은 작자의 뛰어난 글솜씨 덕분이라고 평했다. 김씨는 다만 이야기가 너무 다듬어지고 순화돼 소품화된 느낌이 없지 않다며 아기자기한 재미에 전래동화의 깊고 그윽한 맛을 더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문희씨는 「있더란 말이야」「무슨 짐승인고 하니」 「잡아 먹으면 좀 좋아」라는 식으로 말하듯이 쓰는 글은 그동안 어린이들의 책 가까이 얼씬도 못했다며 『소리내서 읽으면 그냥 자연스런 말이 되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이들의 진짜 국어교재』라고 말했다. 이향숙씨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은 이런 옛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 같다』며 『옛 분위기가 살아있는 삽화도 표정이 살아있어 좋았다』고 평했다.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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