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 反페미니즘 소설 「선택」 펴내

  • 입력 1997년 4월 2일 08시 25분


[권기태기자] 원로 출판인 조상원씨(현암출판사 회장)는 자신의 출판인생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길은 그 시대 주류와 역방향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이문열씨의 작품 행로는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지난 80년대 「이념의 시기」에 보수적 입장에서 민중문학에 맞대응하는 소설들을 써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그가 펴낸 「선택」(민음사)도 마찬가지다. 조선 선조때 실존인물인 정부인 장씨의 입을 통해 당시 여인들이 규범화했던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는 9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융성하고 있는 페미니즘의 입장과 첨예하게 대치하는 구절들이 적지않다. 이 글은 지난해 가을 「세계의 문학」에 첫회분을 연재했을 당시부터 여성문인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여성작가 이경자씨의 작품 「절반의 성공」 「황홀한 반란」을 겨냥해 최근 여성문학에서 다루고 있는 이혼과 혼외정사에 거세게 문제제기를 한 대목이 특히 큰 반발을 불렀다. 「선택」이 출판되면서 이같은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이상경교수(37·여)는 『지금 어느 어머니가 딸에게 「너는 나처럼 살아라」고 충고하겠느냐』며 『이문열씨가 기왕의 작품에서 보여준 보수적 여성관이 확대된 글로서 현실적합성을 상실한 것』이라 말했다. 여자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 문학평론가는 『현재 우리의 페미니즘은 이문열씨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이론상의 정교함을 갖춘 단계지만 TV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페미니즘은 선정적이기 그지없다』며 『「선택」은 이처럼 오도된 페미니즘이 만연하는 풍조에 균형감각을 가져오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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