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성악계 「한국 파워」…유명콩쿠르 제패 잇따라

  • 입력 1997년 3월 12일 08시 04분


[유윤종기자] 지난해 10월 3일 저녁, 이탈리아 로마의 유서깊은 캄피돌리오 광장은 일찍이 볼 수 없던 열기로 가득찼다. 7명의 성악가와 1백8명의 합창단이 임시무대를 가득 채운채 야외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한 조수미를 비롯, 모두가 이탈리아의 음악교육기관을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한국출신 성악가들이었다. TV를 통해 이탈리아와 한국에 방송된 이 음악회는 양국에서 성악계의 「한국인 파워」를 새삼 느끼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와 북부중심지인 밀라노 등지에 집중되어 있는 이탈리아의 한국인 성악유학생들은 최근 10년간 10배 이상의 수적 증가세를 보여왔다. 申斗柄(신두병)이탈리아대사는 이탈리아에 2천명 이상의 한국인이 성악전공으로 유학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독일에서 발간되는 한인회지 「유럽신문」은 이탈리아에 교민이 5천여명 거주중이며 이중 95%가 성악전공 등 유학생이라고 집계했다. 80년대 중반 재이(在伊)교민수가 통틀어 2백명선이었던데 비하면 폭발적인 성장세인 셈이다. 이러한 유학생수의 증가는 뚜렷한 성과로 연결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흔해지다시피 한 한국인의 콩쿠르제패 소식은 유학생의 증가세와 밀접한 비례를 보여왔다. 로마 한인음악회 출연진도 파르마콩쿠르 출신 조경화, 마르티수치콩쿠르 출신 김남두 등 대부분 이탈리아 유명 콩쿠르의 상위입상자들. 이대로의 추세라면 수년 뒤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유수 가극장에서 한국인 남녀성악가가 주연으로서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는 광경도 낯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의 성악 유학열풍을 두고 「이상과열」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도 많다. 우선 귀국후 이들을 수용할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유학중인 성악가들은 대부분 귀국후 음대 교수 및 공사립 합창단 지휘자직을 희망하고 있으나 이 자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매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자연 결원」만 생겨나고 있다. 현재 유학중인 성악가들이 귀국러시를 이룰 2000년대 초반에는 비유학파 음악인을 포함한 성악인구의 구직난은 「아비규환」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음악인들의 지나친 성취욕구가 잡음을 낳기도 한다. 93년에는 국내 한 음악지가 「이탈리아의 다수 정체불명 콩쿠르가 돈으로 입상자를 결정하며 그 주된 고객은 한국인」이라고 주장, 파문이 일기도 했다. 박수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최근 대입실패후 도피처로 유학을 선택한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많은 외화를 들인 만큼의 결실을 모두가 거둘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단장은 『이상 유학과열을 막기 위해 국내 교육기관이 세계적 성악교수를 영입하는 등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유럽인들이 성악전공을 점차 기피하는 가운데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며 『유학인력이 귀국 뒤 국내문화계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도록 음악계가 힘을 모아 이들의 구직 등 활용방안을 연구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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