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띄우는 편지]獨서 활약 인형작가 김영희씨

  • 입력 1997년 1월 14일 20시 22분


생각나세요. 그즈음 시골중학교 초가을 뽀얀 운동장옆 화단에는 샐비어며 백일홍이 유난히 붉었었지요. 그때 당신은 갓 부임한 여자 미술교사였던 내옆에 다가와 가짓수 많은 수채화 물감통을 신기한듯 바라보았지요. 또래에 비해 좀 작고 가냘펐던 당신은 그후 내가 모집한 미술반에서 풍경화며 정물화며 참 열심히 그렸지요. 당신이 신기한 채색을 해서 놀란 적도 있어요. 시골학교를 떠난 뒤 나는 당신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귀국전을 할 때 당신은 예쁜 아내와 밤톨같은 아들을 내게 인사시키고 그때 제자였던 걸 상기시켰습니다. 그후 당신은 가끔 독일로 편지를 보냈지요. 젊은 예술가로서, 주로 화가로서의 미래와 철학에 대해 많은 고민을 보내왔지요. 그동안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오늘 결심하고 내 심중을 적어 봅니다. 예술론이라는 것 자체가 예술가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외로운 독일 땅에서였습니다. 한국인의 자아에 눈을 뜨면서부터였지요. 감자에 눈이 트면서 싹이 돋는 섭리를 아세요. 거기 무슨 이론과 방향제시와 집단의 움직임이 필요합니까. 서양식 삶의 방향과 예술은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릅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미술론을 정리해내고 미술시장도 확립해 우리보다 훨씬 전에 토대를 잡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데 내가 고민하면 할수록 그들의 사상 아래에서 자아를 잃고 콤플렉스를 느껴야 했어요. 그들의 미술이론의 탑이 높고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지요. 예술가가 주눅이 들면 정말 큰일 납니다. 필경 다른 사상에 취하고 붓이 헛놀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겨먹은 것부터 생각도, 마음 씀씀이도, 입맛도, 눈치보는 것도, 냄새 맡는 것도 죄다 서양인과 다릅니다. 미술가는 죽은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자아의 샘물을 퍼올려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또 한가지. 미술가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철학만 내세우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의 한계를 뒤집어 놓는 일입니다. 어떻게. 「직접 만드는 일」을 하는 겁니다. 독일의 화랑가에서 제 작품이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가끔 눈흘김도 있었지요. 현대 미술조류에 한 발도 들여놓지 않으니까 이상했던 모양이지요. 나는 다만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정보화 시대라는 요즈음 미술인의 개성과 자아는 상처투성이가 되고 국제규격에 맞는 작품만 대량생산하는 현상,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옛 선생에게 술 한잔 살 생각이 있으면 귀국했을 때 이 문제를 좀더 얘기해 봅시다. 안녕히 계세요. 김 영 희<화가> 김영희씨(53)는 81년 독일로 건너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종이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다. 자서전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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