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건축/해인사]김석철 『자연과 하나된 모습』

  • 입력 1996년 12월 25일 20시 18분


하늘에서 해인사를 내려다보면 참으로 놀랍다. 땅에서 보던 형상의 원리가 하늘에서 보이는 것이다. 하늘에서 느끼는 일을 땅위에 이룬다는 일은 자연과 건축이 혼연일치가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공간형식에 있어서 한국의 자연만한 것이 없다. 자연이 이미 스스로의 건축적 형상을 이루고 있으므로 한국의 건축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형국이 될 때 최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건물이 자연에 서는 일은 인간이 세상에 서는 일과 같다. 한 인간이 세상에 서는 일은 인문적 사건이지만 인간집합이 세상에 서는 일은 사회적 사건이다. 해인사는 어떻게 건축집합이 대자연에 서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하늘에서 보는 해인사는 바로 한국인의 역사 그것이었다. 해인사는 짓기 시작한지 일천이백년이 되었다. 신라때 창건되고 고려 조선조때 수차례 다시 지었다. 건축원리를 기반으로 천년의 공간을 천년의 시간 위에 이어온 것이다. 일본건축의 정수라 하는 이세신궁은 이십년마다 다시 지어 이천년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것이다. 해인사는 이세신궁같이 동일형식의 반복으로 천년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본래의 원리를 기반으로 천년동안의 건축형식이 이루어온 인간의 역사 같은 것이다. 해인사 가람배치의 원리는 육계 색계 무색계가 진입공간 수도생활공간 예불 및 법보공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에 있다. 배치의 축은 산아래 홍류동계곡에서 시작하여 대적광전 대장경판전을 지나 수미 정상탑 뒤 가야산 정상까지 연결된다. 넓고 깊은 가야산 전체가 길이 3백m, 폭 1백50m인 해인사 가람 속에 들어와 있다. 해인사로 들어서는 일은 세상을 벗어나 불법의 세계인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암시한다. 해인사는 불국사와 함께 한국 천년건축의 가장 완성된 도시적 스케일의 건축군이다. 자연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인공속에 자연의 질서를 담고 불가의 논리를 건축공간으로 구상화하여 천년의 공간을 이룬 것이다. 해인사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극도로 절제된 공간형식 속에 현대의 공학도 이루지 못한 불변의 상태를 이룬 대장경판 안에 정신과 물질이 하나가 된 고답적 정경을 이루고 있다. 하늘에서야 알 수 있을 정신적 깨달음의 상징적 공간을 해인사는 땅위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해인사는 그 이름대로 온갖 사물의 그림자가 바다에 인영처럼 비치듯 부처의 깨달음이 땅위에 구체적 공간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위대한 천년건축이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땅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이미 해인사를 아는 것이다. 김 석 철<아키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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